어떤 중매

한상식(남. 1975년생. 전신마비) 시인

늦가을이 되어서야 배추에게 허리띠를 둘러 주었다

금세 허리가 오드리 헵번처럼 날씬해진 배추 아가씨들

옆 고랑에 서있던 무뚝뚝한 경상도 무 총각들이 힐긋힐긋 눈길을 주니

새침한 배추 아가씨들 슬쩍, 딴청을 부리며

넓은 배춧잎으로 내 종아리를 툭, 툭 친다

평소 심드렁하게 배추 아가씨들을 바라보던 무 총각들

한층 날씬해지고 예뻐진 배추 아가씨들을 보며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기도 하고 옷매무새를 다듬느라 분주하다

내 한 끼 허기를 달래기 위해 텃밭에 심어 놓은 배추와 무도

때가 되니 서로에게 이끌려 한 홉의 사랑을 하려 하는 구나

그날 밤이었다. 방에 누워 책을 읽고 있는데

배추 아가씨와 무 총각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렘으로 물든 그 음성에 별이 핑그르르 돌아앉던 가을밤이었다

올해도 나의 중매는 성공이다. 여느 해처럼

한상식: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2003),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가작(2003),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2005),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동화 당선(2006), 구상솟대문학상 대상(2007) 외. 시집 <어떤 중매> 외.

시평 : 시인은 마술사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한상식의 시 <어떤 중매>는 시가 얼마나 황홀할 수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시골 텃밭에 심은 배추와 무를 보고 시인은 아주 로맨틱한 사랑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독자들은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배추아가씨는 탤런트 이나영, 무총각은 원빈으로 이입하기도 하고, 꼭 이런 스타가 아니어도 자기 주변에 있는 처녀 총각을 모두 가져다 붙이고 있을 것이다.

배추가 이렇게까지 섹시한 줄 몰랐다. 무가 이토록 남성미 넘치는 줄 이 시를 보고 처음 느꼈다.

시인은 마술사이다. 그 흔한 배추와 무를 아름다운 밀당의 주인공으로 만들 생각을 어떻게 하였을까? 시인의 상상력은 무죄이다.

시인은 자신을 중매장이로 설정하였다. 자신이 그 사랑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건강한 청년이었다. 그의 몸 속에 근육병이 번지고 있는 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근육병이 많이 진행되어 현재는 전신마비 상태이지만 근육이 빠져나갈수록 시인의 상상력은 무한대로 넓어진다.

시인은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시를 쓰는 마술사가 되었다.

어떤 중매(영시)

A Matchmaker

Han Sang-sik

It was late autumn before I put belts around the waists of the cabbages.

The young lady cabbages soon have slim waists like Audrey Hepburn

and the brusque Gyeongsang-do bachelor radishes standing in the next furrow

keep giving them sidelong glances.

Furtively, the prim young lady cabbages feign indifference.

They tap at my calves with their wide cabbage leaves.

Usually the bachelor radishes watched the young lady cabbages with little interest

but now they stare at them, so much prettier and slimmer,

whispering in hushed tones amongst themselves

and busily making themselves presentable.

The cabbages and radishes I planted in my garden to calm my hunger in a meal,

when the time is right come together for a moment of love.

That night as I was lying in bed reading a book

I heard a young lady cabbage and a bachelor radish whispering.

That autumn night the stars spun round and turned their backs

on that sound filled with romance.

This year too my matchmaking has been a success. Like every other year.

Mr. Han Sang-sik. Born 1975. General paralysis.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grand prizewinner (2003)

Korea Disabled People’s Literature Award - runner up (2003)

Kookje Daily News spring literary contest - winner for children’s literature (2006)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recipient (2007)

Poetry collection: A Match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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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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