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을 위한 노래. ⓒ이승범

난을 위한 노래

최명숙(여, 1962년생, 뇌성마비) 시인

눈보라 매섭던 섣달 그믐께

누구인가 갖다 버린

주인도 모를 난초 한 포기를 안아다가

남동향으로 나있는 창가에 두었다

꺾인 가지는 동상마저 걸려 진물이 흐르고

바람결에 야윈 살이 트는 천덕꾸러기를

겨울볕을 좋아하는 소망으로

들녘에 아지랑이 피기를 기다리는 봄누리로

보듬고 감싸주었더니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열리는

세월을 잇는 해거름녘에

아아, 이 어찌된 해탈인가

눈물나도록 청아한 화관을 두르고

내 앞에 일어서더니

날카로운 듯 부드럽게 휘어지고

정갈한 듯 수더분한 그 자태

어느 게 이토록 고결한 환생을 이루었는가

어느 게 이처럼 위풍당당한 풍모를 가졌는가

한 생의 기쁨은

숱한 인연의 고해를 건넌 후에야

한결같은 마음으로 보듬어진 보람으로

마침내 새살이 돋아 피어났구나

최명숙: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입선(1990), <시와 비평> 신인상(1992),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소설 당선(1995), 구상솟대문학상 대상(2000) 외. 시집 <풀잎 뒤에 맺힌 이슬> <산수유 노란 숲길을 가다> <목련꽃 환한 계단에서의 대화> 외 7권. 예술과 불교를 사랑하는 장애문인들의 모임 <보리수 아래> 대표.

시평 : 환생의 노래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시를 보면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시인의 시에는 인간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버려진 난을 정성껏 키웠더니 청아한 화관을 두른 당당한 모습으로 기쁨을 준다는 것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두 가지 메시지를 주고 있다. 첫째는 해탈이고, 둘째는 환생이다.

버려진 난은 세상에서 모진 풍파를 겪으며 외면당한 약자를 뜻하는데 짓밟히며 당한 수모와 고통을 떨쳐버리고 모든 욕심을 버리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좌절로 인한 포기라고 여기고 존재조차 무시하지만 누군가의 지지만 있다면 더 멋진 모습으로 환생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고통이 있다. 그 고통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작은 관심만 가져준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시인은 이런 삶의 원칙을 불교에서 가져왔다. 불교사상은 원융이라서 둥글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모습보다는 미래를 보라고 시인은 당부한다. 작은 자비심으로 큰 결실을 볼 수 있다고 시인은 조언한다.

시인의 뇌성마비장애는 고통인 동시에 원융의 지혜를 갖게 한 해탈이 아닐까.

난을 위한 노래(영시)

Song for the Orchid

Choi Myeong-suk

In deep midwinter when the blizzards were harsh

I embraced an orchid plant without an owner

which someone had thrown out

and placed it by a window facing south-east.

The broken stems had frostbite, the wounds were discharging,

the flesh, wasted in the wind, was chapped

so I embraced and wrapped it up,

hoping it would enjoy the winter sunlight,

while it waited for spring haze to shimmer in the fields.

At the year’s turn, past and future joined

as one year ends and another begins,

ah, what liberation it brought.

Wearing a flowery coronet so graceful it brought tears to my eyes,

it rose before me,

sharp yet gently bending,

neat and tidy yet artless in figure.

What could have produced such a noble rebirth?

Is there anything with such majestic charm?

After having crossed countless bitter seas of karma,

in reward for having embraced them with a constant heart,

as new flesh grew, a lifetime’s joy bloomed.

Ms. Choi Myeong-suk. Born 1962. Cerebral palsy.

Korea JoongAng Daily sijo contest winner (1990)

Poetry and Criticism Newcomer Award (1992)

Korea Disabled People’s Literature Award - recipient for fiction (1995)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recipient (2000)

Poetry collections: Dew Behind Leaves; Taking the Sansuyu Forest Path; and 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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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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