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을 마시며. ⓒ이승범

차 한잔을 마시며

이영범(남. 1957년생. 뇌성마비) 시인

당신에게 전하는 편지

첫머리에 안녕하세요?

물음표는 파란 볼펜으로

쓰겠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이 있으니까요

끝머리에 안녕히 계세요

마침표는 고무달린 향나무 연필로

찍겠습니다

당신과 재회하면 쉽게

지울 수 있을 테니까요

이영범_남. 1957년생. 뇌성마비. 시집 <겨울 햇살> <강촌역 입구에 갈색나이 초입에> <불암산 수컷 청설모의 마음향> <동틀 무렵에 첫 자리에 주님부터 뫼시고> 외.

시평 : 속삭이는 시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시인의 시는 아주 편안하다.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더 사랑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편지를 쓸 때 첫줄의 물음표는 파란색 볼펜으로 마지막줄 마침표는 연필로 찍겠다고 한 것은 재미있는 듯하지만 이보다 더 애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시인은 뇌성마비로 언어장애가 있다. 시인은 말수가 적다. 그저 씨익 웃는 것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대답에는 부정이 없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넉넉함과 여유가 있다.

그의 시에도 바로 그런 긍정이 있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하지만 만나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그저 다시 만날 날을 준비할 뿐이다. 그의 사랑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긍정 때문이다.

그리고 속삭이는 듯한 그의 시 작법이 쉽게 시를 스며들게 한다. 정말 찻잔을 들고 읊조리는 듯 느껴진다. 시인은 지금도 우리에게 속삭인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차 한 잔을 마시며(영시)

While Drinking a Cup of Tea

Lee Yeong-beom

Here is a letter for you:

For the first line: How are you?

The question mark

I will write

with a blue ball pen.

Because I nourish the hope

that I will see you again.

For the last line: Goodbye.

The full stop

I will draw

using a juniper-wood pencil with an eraser on the end.

Because then, when we are reunited,

I’ll be able to rub it out easily.

Mr. Lee Yeong-beom. Born 1957. Cerebral palsy.

Poetry collections: Winter Sunshine; At the Brown Age Entrance by Gangchon Station; and 2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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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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