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이승범

빈 집

김민수(남. 1962년생. 청각장애) 시인

종기처럼 그을린 마을이 늙을 때마다

빈 집 하나씩 늘어갑니다

허전한 맘에 빗물은 아무데서나 울며 흘러가고

꼭두새벽 소죽 끓이며 아침을 열던 부엌도

밖으로 나와 하늘만 봅니다

관절염처럼 삭여진 기둥 옹이에

마파람 설렁설렁 드나들어 휘어지고

지붕은 어느새 어깨까지 내려찍으며 힘들뿐입니다

궁핍한 삶을 고스란히 찍어두던 형광등도

깜빡거릴 기력도 없고

구석마다 참견하던 햇살도

추하게 널브러진 마당에 안쓰럽게 서성입니다

평생을 품안에 안고팠던 담장은

어느 날부터 시름 누워 있고

문패 하나 세우지 못한 죄로 대문은 충혈되어

세월의 녹만 멍처럼 번집니다.

김민수_ <한맥문학> 신인상, <시조문학> 신인상,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2008) 전북 김제 농악경연대회 대상, 모악서예대전 서예문인화 입선 외. 시집 <겨울강> 외.

시평 : 집이 병들다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이 시를 읽으면 세심한 관찰력에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도시 개발 등으로 주인을 잃은 빈 집이 폐허가 된 모습을 병든 모습에 너무나도 리얼하게 대입시켰다. 기둥은 관절염에 걸려 굽어지고, 형광등은 깜빡거릴 기력도 없이 그저 매달려 있다. 그리고 한때 집을 지키던 늠름했던 담장은 시름시름 누워있고, 그리고 녹 슨 대문을 멍이 든 것으로 표현한 것은 경이로운 시상이다.

우리 모두 빈 집을 보았지만 그저 귀신 나올 것 같다. 우범지역이라서 무섭다는 정도로 생각하지 이렇게 의인화하여 빈 집의 아픔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시인이 위대한 창작을 한 것이고,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 감동은 인간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예술이 인간의 자존감을 높여준다고 하는 것이다.

시인의 관찰력은 그의 청각장애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소리의 세계와 단절된 대신 시각의 세계가 열려 남들이 놓치고 그냥 지나가는 것을 잡아내는 능력을 가졌고, 그것이 시어로 표현되어 그 상황을 가장 정확히 전달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시인은 시로 말하는 정말 멋진 화자(話者)이다.

빈 집(영시)

Deserted Houses

Kim Min-su

Whenever a village, black as a sore, gets older

deserted houses increase in number, one by one.

In empty hearts rain flows weeping everywhere,

while kitchens that once saw in the morning boiling cattle feed at crack of dawn

come outside and just stare at the sky.

The knots of pillars stiff like arthritis

bend in the soft passing of the south wind

until the roof is brought down to the height of the shoulders, straining.

The fluorescent lamp that once captured needy lives just as they were

has not even the vigour to flicker now

and the sunbeams that once probed every corner

only hang around pathetically in the unsightly, sprawling garden.

The garden wall that embraced a whole lifetime within its bosom

from some day or other lies overwhelmed on the ground

while the front gate grows bloodshot, guilty of failing to bear a nameplate,

and the rust of time spreads like a bruise.

Mr. Kim Min-su. Born 1962. Hearing impairment.

Hanmaek Literature Newcomer Award - recipient

Sijo Munhak Newcomer Award - recipient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grand prizewinner (2008)

Poetry collection: Winter River

As a Korean traditional musician the poet currently runs a kindergar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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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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