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청년 세대

청년일자리, 청년주거정책 등 세대에 기초한 사회정책과 담론이 분주히 제기되고 있지만, 장애를 가진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는 아마 장애인들은 청년과 비청년이라는 세대론적 구분을 굳이 하기 이전에, 연령에 상관없이 공유하는 ‘장애’라는 오래된 구조적 차별과 손상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확실히 장애는 세대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차이를 초월하는 경험이다.

그 때문에 시각, 청각, 지체장애 등 천차만별인 장애유형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는 정치적 소수자집단이 확고하게 결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장애를 가진 청년세대’라는 구분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청년세대란 현재 20대에서 30대를 보내는 사람들로서, 대략 80년대 이후에 태어나 2000년대 또는 2010년대에 20대를 보냈고,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장애인권운동의 격변기가 만들어낸 제도와 정책, 담론 속에서 첫 성장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세계적인 인권운동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90년대 후반부터 거세게 일어났던 광범위한 장애인운동의 결실은 2000년대를 지나면서 구체적인 주제와 정책으로 발전한다.

97년 제정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의 영향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고, 2004년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됨으로써 이동수단의 편의시설이 점차 확대된다.

2006년에는 세계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하였으며, 2007년에 비로소 「장애인차별 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기간 동안 활동보조인 제도가 자리 잡았고 자립생활운동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90년대에도「장애인복지법」이나 「장애인고용촉진법」등 장애관련 법률과 제도가 존재하였지만, 2000년대에는 복지를 넘어 권리중심의 장애인운동이 전개되면서 관련 법률과 제도 역시 교육, 문화, 정치에 대한 참여권과 반차별을 보장하는 내용들로 구축된다.

이 시기 장애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가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을 중심으로 한, 즉 청년 장애인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장애운동도 활발해졌다.

여전히 시외버스 등은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고, 농인들의 의사소통권이 보장되지 않는 등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십여 전에 비해 장애인들이 외출을 하고 직업을 가지며 정치적인 활동에 참여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대학을 다녔거나 다른 여러 공간에서 최초의 성인기라 할 20대를 보내며 성장한 장애청년들은 더 이상 배려나 온정주의에 기초한 장애인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들의 권리관념은 어느 세대보다 투철하고, 또 ‘태생적’이다. 어느 세대보다 영화나 연극을 자유롭게 보고, 차별에 대해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교육수준은 높고, 사랑, 몸, 성 문제에 대한 섬세하고 솔직한 입장을 지닌다.

신경증의 시대를 사는 법

다른 한편, 이 세대는 어느 때보다 각박한 취업난 속에서 일반적인 20대들이 경험하는 ‘강박적인 자기착취’에 사로잡혀있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우리의 시대를 ‘신경증의 시대’로 묘사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노동력과 시간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강박적으로 쥐어짠다. 과거에 장애인들이 사회가 만들어낸 철저한 배제와 차별 속에서 그 어떤 인간적인 경험도 누리기 어려웠다면, 2015년의 ‘장애청년 세대’는 (여전히 비장애인에 비해서는 많은 영역에서 배제되고 있지만) 적어도 그 이전의 어떤 장애인들보다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기회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참여 시도는, 만성화된 경기침체와 사회전반에 확산된 ‘강박적 자기착취’의 세계관 속에서, 장애를 가진 신체로 제한된 시간과 노동력을 극한까지 끌어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어느 때보다 우울과 열등감 속에 빠트린다.

장애인의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장애인 고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평등실현 조치, 각종 소득보전 정책 등은 매우 중요하고 계속하여 추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한편으로, 점점 더 제도적으로 평등해지는 사회의 한 가운데에서 그와 같이 평등한 조건에서도 “제대로 경쟁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나 자신”이라는 자기착취의 강박에도 대응해야 한다.

우리의 선배 장애인들은 완전히 불평등한 조건 속에서 살아야했으므로, 최고의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여 자기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선배들이 투쟁하고 고민하여 만들어낸 ‘과거에 비해 차별이 없어진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청년들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우리는 더 많은 평등과 복지,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러나 나아가, 그러한 권리와 평등이 실현된 사회 위에서 진정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자기 몸을 부정하고 몸의 생산성에 좌절하지 않는 확고한 기반을 구축해야할 것이다.

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모여서 특별히 더 궁구해야할 주제가 있다면 바로 이 ‘강박’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RI KOREA 산하에는 2014년부터 청년특별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청년특별위원회는 거창한 일을 하기 위한 관료조직이나 전문가 집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곳에서는 장애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과 이념들을 함께 공부하며,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이 치열한 경쟁의 사회에서 자기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정체성과 신념을 고민한다. 세대의 차이를 포착하는 것이 또 다른 ‘분리주의’로 받아들여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만 새로운 과제를 검토하고 실천할 역할과 책임을 좀 더 감내해야할 사람들이 있음을 강조하고자 할 따름이다.

*칼럼니스트 김원영님은 RI KOREA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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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KOREA(한국장애인재활협회 전문위원회)'는 국내·외 장애 정책과 현안에 대한 공유와 대응을 위해 1999년 결성됐다. 현재 10개 분과와 2개의 특별위원회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천전략 이행, 복지 사각지대 해소 등 국내외 현안에 관한 내용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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