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 연가. ⓒ이승범

나팔꽃 연가

진성백(남, 1962년생, 전신마비) 시인

그대는 키다리 나무고요

나는 난장이 나팔꽃이에요

여름날

짧디 짧은 나의 사랑은

그대를 채 님이라

불러보기도 전에

싱겁게 막을 내리지만

우리의 사랑을 시샘하는지

매미는 왜 그리도

울어 지치던가요

그대여,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사랑은

술래잡기 같은 것이지만

반면 사랑은

메마른 영혼을 살찌게 하는

한 모금의

청량제 같은 것이기에

그대여,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가슴 터지도록 불러요

애틋한 우리의 사랑노래를.

故 진성백_ 근육병. 시집 <꿈꾸는 자갈> 외.

시평 : 어느 무명시인의 꿈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시인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시집 <꿈꾸는 자갈> 뿐이다. 시인이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솟대문학으로 되돌아온 우편물을 정리하느라고 전화를 해보면 “그 사람 죽었어요. 벌써 한참 됐는데. 이제 책 보내지 말아요. 볼 사람도 없는데.” 한다.

이것으로 그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전부다. 그의 영정 사진 앞에 꽃 한 송이 놓아줄 기회조차 주지 않는 무심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중증장애인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다.

한참동안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한다. 그것이 내가 무명 장애시인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시인은 자신을 나팔꽃이라고 하였다. 키가 작아서 다른 사람들을 우러러 봐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팔꽃에 비유한 것이다. 나팔꽃은 7~8월에 짧게 꽃이 피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금방 사라지지만 시인은 생명이 다 하는 순간까지 사랑의 노래를 부르자고 애원하듯 부탁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시를 썼을 것이다. 시인의 첫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이 된 <꿈꾸는 자갈>이 나왔을 때 나는 시인에게 이 제목으로 동화를 써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고 하였는데 그는 마치 꿈을 꾸듯이 말했다.

“내 꿈은 자갈이 되는 거예요.”

자갈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시인, 그 꿈은 이루어졌으리라…….

나팔꽃 연가(영시)

Morning Glory Love Song

Jin Seong-baek

You are a gangly tree

and I am a dwarf morning glory.

Summer day.

My so very brief love.

Even before

I can call you my love

the curtain falls in a flash.

Is it because they’re envious of our love

that the cicadas

cry themselves to exhaustion so?

My dear,

the love that seems it will be caught but isn’t

may be like a game of tag

but on the other hand, love

can be like a cool tonic

that fattens up the parched soul

with just a single gulp.

My dear,

until the moment when life ends

sing as though your lungs will burst

our plaintive love song.

Mr. Jin Seong-baek (deceased). Born 1962. General paralysis.

Poetry collection: Dreaming Pebbles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