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다쳤습니다. 배드민턴을 치다가 순간 왼쪽 종아리 근육이 뒤엉키는 느낌이 들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왼쪽 허벅지까지 반 깁스를 하고 목발에 무거운 몸을 의지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첫날, 깁스를 한다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 깁스를 해서 뻣뻣한 일자 나무토막이 되어버린 다리에 적응하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버렸습니다. 침대에 누워 한숨을 돌리는데 꿈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일 거야... 내일이 되면 뜨거운 여름 햇볕을 받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서 출근 할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까무룩 잠이 듭니다.

둘째날, 내 다리에는 당연히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고, 나는 침대에서 거의 미끄러지듯 내려옵니다. 아침 행사인 샤워, 화장, 몸치장은 일단 생략하고 겨드랑이에 목발을 차고 문을 나섭니다. 그 때부터입니다. 내가 알던 것들이 밤사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게, 시간, 길이의 속성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현관문을 밀고 나서려는데 문이 그렇게 재빠르게 닫힐 줄 몰랐습니다. 열자마자 닫힙니다. 매우 무겁습니다. 온몸으로 문을 최대한 밀어 놓고 사이를 빠져 나옵니다. 또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길은 또 어찌나 길던지요. 목발, 발, 목발, 발, 목발, 발 하고 머릿속으로 세어가며 걸음을 띄어 놓습니다. 10초면 가 닿을 거리가 5분은 족히 걸립니다. 시간이 30배로 늘어나버렸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목발로 걷는 게 이렇게 불편 하구나 라고 의연하게 넘어갑니다.

이제 의연은 짜증으로 바뀝니다. 4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까마득한 4층이 무심하기만 합니다. 가제트 팔로 쭉 뻗어 난간을 잡고 한번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난 인간인걸로요. 걷기 수련을 하듯 한칸 한칸을 오르는데, 예전에 뇌병변장애인과 무용공연을 하셨던 선생님의 경험담이 떠올랐습니다.

공연장은 고사하고 사소한 연습장소를 빌리는데도 휠체어로 이동 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을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밥을 먹어야 합니다. 식당이 2층에 있는데 또 다시 뻗어 있는 계단들이 이제는 무시무시하기까지 합니다. 휠체어길이 있기는 하지만 식당 뒷문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길입니다.

예전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분이 장애인이 다니기에 불편한 공공시설 조사를 하시는 걸 본적이 있습니다. A4 용지 한가득 쓰여 있는 리스트를 보면서 저렇게 많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고작 1주일 목발을 사용하는데도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불편한 시설들이 이렇게나 많이 느껴집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사용 하는 사람 대비 시설비의 효용성에 밀려 장애인들의 당연한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곳이 우리 주변에 여전히 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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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건강운동과학연구실 특수체육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학 중 이며, 서울대학교 'FUN&KICK'에서 발달장애학생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체 표현에서 장애인의 움직이는 몸은 새로운 움직임이며 자기만의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다. 칼럼을 통해 발달장애학생들의 움직임과 영화 및 예술을 통해 표현되는 장애인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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