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면 나는 스승님들께 찾아뵙지 못하는 죄스러움으로 카네이션 꽃 한 송이를 편지에 담아 진솔한 나의 마음을 전하곤 한다.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느 순간에 시간은 가고 스승님의 검은 머리는 온 데 간 데 없이 온통 은발이 자리한다. 노년생활에 어쩌면 황혼을 준비하시는 지도 모른다.

갑자기 시간이 없음을 실감하고는 1995년부터 모인 모임의 시기를 방학이 아닌 꽃 피는 봄으로 앞당겼다. '더운 여름보다는 다니시기에 수월한 봄이 좋겠다.'싶어서. 아니 그것보다 더 다급한 것은 걸으실 수 있을 때 더 모시고 다녀야겠다.

2013년 이맘때에는 스승님을 모시고 순천만에 다녀왔는데 올해는 바쁘다는 핑계로 모시지 못함을 죄스러워하며, 순천만에서 스승님과 함께했던 시간을 그리며 글을 쓴다.

“교장 선생님, 이번 모임은 5월에 하고요, 장소는 순천만 일대를 가려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어머나, 정원도 보고 꽃도 볼 수 있겠네, 버스도 타고 걷는 것도 어렵지 않아서 좋겠어요.”

이른 새벽에 일찍 도착하시어 나를 기다리시는 모습에서 여행을 한다는 기쁨의 설렘을 엿볼 수 있었다. 버스 속에서 5시간의 긴 여행임에도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그 동안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와 있었던 이야기 봇짐을 푸시고 신이 나셨다. 사부님 돌아가시고 혼자 계시면서 말동무가 없으셔서 적적하셨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

도착하여 여러 나라의 정원을 둘러보시며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 흔들다리를 건너며 흥을 내시기도 하고, 한 곳이라도 더 보며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하시는 모습도 읽었다.

하루의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피곤하실까 걱정했는데 한 숨도 주무시지 않고 하루를 정리하셨다. 70세를 훌쩍 넘기셨고 몇 년 전 무릎의 통증으로 걷는 것이 어려웠던 고통을 딛고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며 세상사 늘 아름답고 자연에 순응하듯 얼굴이 편하고 밝으시다.

두 번째 학교는 집과 너무 먼 거리에 있어서 출퇴근하기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힘든 만큼 모든 일은 공평하게 즐거운 일이 곳곳에 나를 기다렸다.

두 아들이 어려서 병치레를 심하게 하여 병원을 들린 후 늦은 시각에 인사를 드리면,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이들 어려서 키우느라 고생이 많지요.”하시며 격려를 하신다.

우리 특수학급의 학생들 이름을 아시고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교실에 오시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대화하시고 칭찬해 주신다.

"교장선생님은 너희들이 정말 예쁘단다. 거짓말도 안 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들으니 천사 같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을 안다. 교장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중간고사를 보고 하나라도 맞으면 기뻐서 달려가는 곳이 교장선생님의 방이다.

“교장선생님, 저 오늘 시험 한 개 맞았어요. 정답이래요.” 큰 소리로 자랑을 하노라면, “정말 잘 했구나, 그거 정답이다. 잘 맞추었다.”하시며 같이 맞장구를 치시며 기뻐해 주셨다.

그런 교장선생님을 아이들은 할머니 대하듯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손에 가만히 놓아드리기도 한다.

졸업한 선아는 부산으로 이사를 가서 세탁소 보조 일을 하는데 매년 스승의 날에는 잊지 않고 인사를 드린다.

“교장선생님, 아니 할머니 저 세탁소에서 일해서 돈 많이 벌었어요.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비도 내 드렸고요, 옷도 사드렸어요. 스승의 날인데 못 찾아뵈어 죄송합니다. 교장 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교장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그 때의 아이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시며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신다. 아이들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맑은 호수를 보는 것 같다고 하시며 선아가 전화를 드리는 날에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신다.

1990년대 초는 특수교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특히 관리자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학생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보다는 사고가 날까봐 노심초사하는 시기였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도 이 교장선생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대화하셨고 사랑하셨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교장 선생님을 할머니처럼 대했고, 스승님으로 모셨다.

재작년 스승의 날에는 우리 아이들의 스승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 겨울에는 여수 오동도와 동백꽃을 보고 왔고, 올해는 여름방학에 여행을 준비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걸으시고 건강하실 때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보시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뵙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의 스승님은 저의 스승님이십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시어 우리 선아가 교장 할머니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저도 지켜봐 주세요. 무언의 가르침으로 주신 겸손함과 사랑을 실천하는지요.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황윤의 칼럼리스트
특수학교 성은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특수교육과 직업재활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특수교육을 실현하면서 장애학생 진로직업교육에 매진하고 교육부와 도교육청에서 정책을 입안하여 학교 현장에서 적용함으로써 장애학생을 사회자립 시키는데 부단히 노력했다. 칼럼을 통해서 특수교육 현장의 동향,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간절한 바람, 장애인의 사회통합관련 국가의 정책과 적용 현실 등을 알려서 현재보다는 발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모색하는 계기가 되고자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