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과 손이 말하는 언어, ‘수화언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대화'가 오가기 마련이다. 그 대화의 내용이 어떠하든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이 오가게 된다.

나는 20살 때부터 수화언어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거의 글로만 소통하며 살았다. 필담으로 나눈 시간이 오래 걸렸으니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시간이 꽤 적었다. 그러다 보니 '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가요?'라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많았다.

늘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어나가느라 바쁜 내 눈은 정작 그들의 눈동자를 바라보지 못했다.

내가 누구이며,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만 집중하다 보니까 그가 이야기하는 이유가 뭔지,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어떤지를 정작 들여다보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다.

나는 수화언어를 만나기 전까지 '글'이 없는 '대화'를 거의 안 들으려고 했었다. 무조건 '글'이 있는 대화만 고집했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을 때에는 사람의 눈이 아닌 입술만을 바라봐야 했다. 그것도 온 신경을 한 데 모아서 입술을 바라봐야 했으니 어찌 안 피곤할 수 없겠는가.

그렇게 난 관계에서의 대화에 늘 '진땀'을 빼야만 했다. 길을 나설 때나, 누구를 만날 때나, 주문을 할 때에도 종이에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적어서 보여주는 데에 늘 바빴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샛별아, 너는 늘 내 입술만 보는 것 같아. 내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아."

그 한 마디를 듣자마자 나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말없이 눈물로 대답하게 됐다.

그게 청각장애를 가진 나로서의 가장 강력한 대답이었을까 싶다.

그런 계기가 있은 뒤로, 나는 글보다 더 사람과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대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부모님이 반대했던 '수화'가 떠올랐다.

다른 대학교에 합격한 내용의 문자를 받았지만 무조건 수화를 배울 생각 하나로 나사렛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더 씩씩하고 당찬 친구를 만나 그 친구의 눈동자를 오랜만에 보며 손으로 말하는 내용을 유심히 보니까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오랜만에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에 기쁨이 차올랐다.

그렇게 나는 언어로서의 정체성을 비로소 되찾은 기쁨에 늘 밝게 살아가려고 노력중이다. 내 주권도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수화언어로 같은 동족과 같은 농인들에게 어떠한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는지를 수화언어를 모르는 그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농인의 언어가 나처럼 기쁘고도 당당하게 세상과 소통하였으면 좋겠다. 나처럼 늘 신경을 곤두선 채로 사람의 입술을 읽어야 하지 않아도 수화언어 하나로서 사람의 마음을 알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그 언젠가가 우리에게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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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샛별 칼럼리스트
경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농인 엄마가 소리를 알아가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수어와 음성 언어 사이에서 어떤 차별과 어려움이 있는지,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일상 속에서 잘 풀어내는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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