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대학시절 대외활동을 하며 만난 이들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였다.

건장한 20대 청년들의 왕성한 먹성에 그 동안의 공백을 메워줄 왁자지껄한 수다가 더해져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이 가시고 찾아온 잠깐의 고요에 지그시 창밖을 바라보던 한 친구놈이 넋두리하듯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와, 밖에 봐봐. 날씨 한 번 끝내준다.”

“그러게, 춥다춥다 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1년 사계절이 오늘 날씨만 같으면 좋겠다.”

그렇게 친구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염이라도 된 듯 돌아가며 한 마디씩 봄을 예찬(?)하는 순서를 갖는가 싶더니만 잠시 후, TV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탁자 위를 탁 치며 일어난 다른 친구놈으로부터 갑작스런 한 가지 제안이 이어졌다.

“야야, 얘들아! 그러지 말고 이렇게 모인 김에 우리 꽃구경이나 갈래? 이런 날씨에 실내에만 있기 좀 아깝잖아.”

“오 진짜? 그럴까?”

“야 콜! 콜! 가자 가자. 그래도 명색이 봄인데 콧바람 한 번은 쐐야지.”

‘엥?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갑자기 웬 꽃구경?’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친구놈의 발언에 어안이 벙벙.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비단 나 혼자 뿐이었던 지 마치 이 제안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순식간에 또 다시 웅성웅성. 어느 새 대화의 주제는 급하게 정해진 봄나들이 계획을 완성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었다.

아아, 이런 걸 보고 바로 젊음의 열정과 패기라고 하는 것일까? 분명 앉은 자리에서 쑥떡쑥떡 몇 마디 이야기가 오간 게 전부인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새 뚝딱. 장소는 물론 야외 나들이에서의 필수 코스인 각종 군것질과 저녁식사 비용으로 충당할 회비의 액수까지. 불과 십 여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나들이 계획이 완성되어 버렸다.

“그럼 다들 가는 거지?”

“콜!”

“야야, 시간 없어. 더 사람 많아지기 전에 빨리빨리 움직이자!”

그리고는 곧장 우르르 몸을 일으켜 삼삼오오 발걸음을 재촉하는 무리들. 그러나 야속하게도 한껏 들뜬 이들의 기분에 가차 없이 찬 물을 끼얹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바로 나였다.

“얘들아, 미안한데 너희들끼리 가야할 것 같아. 사실 이 뒤에 다른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일정을 조정하는 건데 이렇게 야외로 나들이까지 가게 될 줄은 차마 몰랐네.”

갑작스런 내 말에 다들 흠칫 어리둥절함도 잠시, 몇 차례나 계속된 권유에도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내 모습에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저마다의 인사로 다음의 만남을 기약했다.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 잘 지내고 다음에 또 보자.”

“그래그래. 일 잘 보고, 대신 다음에 우리 만날 때는 하루 통째로 비워놔야한다?”

“응, 꼭 그럴게. 미안 얘들아, 내 몫까지 재미있게 놀다 와!”

그렇게 헤어지는 친구들의 무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두 손을 높이 흔드는 것으로 짧았던 만남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한 나는 터벅터벅 그들과는 반대방향의 경로를 택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 한 켠, 자꾸만 새어나오는 씁쓸한 기분을 애써 목 뒤로 꾹꾹 눌러 삼키며 말이다.

하하.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미 ‘단조로움의 대표주자’라고 불리울 정도로 1년 365일 중 거의 대부분을 집과 직장만으로 반복되는 패턴을 선호함은 물론, 덤벙대고 칠칠맞은 성격과는 반대로 사전에 예정된 약속이 있을 때면 며칠 전부터 체크하고 또 체크해 되도록 1일 1약속만을 고수하는 내게 근 한 달 전부터 예정된 모임 후의 일정이란 어불성설.(語不成說)

다만, 언젠가부터 마음 한 구석을 떡하니 차지한 부담이란 감정이 몰고 온 여러 가지 생각들이 쉽사리 다음의 행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남독녀 외동 딸. 말로는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성장 과정 가운데 가랑비에 옷 젖듯 찾아든 공허함과 외로움은 나를 유독 사람 좋아하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 덕에 어린 시절부터 여러 사람과의 어울림이 있는 곳이면, 만인이 나를 허락해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덥석덥석 어울려 놀기 좋아했던 내가 나도 모르는 새 이렇게 타인과의 어울림을 주저하게 된 것은 아마 중학생쯤 되어 어느 정도의 이성적인 상황판단이 가능해졌던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이미 한 차례의 칼럼을 통해 밝힌 바, 조금은 서툰 걸음일지언정 별도의 보장구 없이도 독립적인 보행이 가능한 덕에 타 장애인들에 비해 이동권과 접근성면에서는 그리 큰 제약을 받지 않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타인과의 보행, 특히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하는 보행은 사실 내게도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장애인들과는 확연히 나는 속도 차에 출발은 같이 했으나 빈번히 그들의 걸음을 놓쳐버리는 통에 주인을 뒤쫓는 충성심 짙은 강아지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경험이 다수.

생각 같아서는 최대한의 속도로 내가 옆 사람에게 맞추어서라도 함께 걸어가고 싶긴 하지만 조금만 기존의 페이스를 벗어나 버리면 몸 전체의 균형을 잃고 넘어져버리기 일쑤인 탓에 이와 같은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된 후부터는 아예 ‘나와 다른 사람 모두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명분하에 정말 꼭 지켜야 할 자리를 제외하곤 십중팔구 독자적인 행보를 선택하는 습관 아닌 습관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3G, 4G, LTE 그리고 LTE-A에 이르기까지. 오르지 ‘조금 더 빠른’ 전진만을 위해 정작 필요한 균형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오늘날.

5분이 멀다하고 손목시계를, 스마트폰을 이용한 대중교통의 도착시간을 들여다보며 종종걸음을 치는 옆 사람을 보노라면 “우리 조금 천천히 가도 될까?”라는 이 말 한마디조차 쉽게 꺼내기 힘든 오늘날이지만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며 재촉 아닌 ‘여유’를 챙겨 넣는다면 더 이상 남들보다 조금은 더딘 걸음에 늦는다고 타박하고, 시간이 없다고 애태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맞잡고 푸른 하늘 눈부신 햇살의 여유를 느끼며 걸어갈 수 있는 진정한 동행(同行)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와 함께 거리를 걸으며 낯선 이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당신과 함께 함으로 우리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았으므로.

우리에게 결코 ‘서두르라’고 말하지 않는 이에게 복이 있나니. 그리고 우리가 하던 일을 낚아채 대신 해주지 않는 이에게 더 큰 복이 있나니

"우리에겐 도움이 아닌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으므로"라는 작자 미상의 ‘장애인들을 위한 산상수훈’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와 닿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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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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