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행진. ⓒ박정혁

내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행진을 처음 접한 건 2003년 4월20일이었다. 그 당시에도 어제처럼 비가 내렸다. 어제는 오전에 좀 내리고 그쳤지만 12년 전 그날은 하루 종일 내렸다. 처음 장애인생활시설을 나와 피노키오센터 자립생활 체험홈에 입소한지 보름 만에 참여했던 행진이었다.

당시에 난 수동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센터 사회복지사가 밀어주었는데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기다란 쇠사슬로 연결했고 연결된 쇠사슬 중간 중간에 우리의 요구들을 적은 구호들을 걸어 놓고 신나게 행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로서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었다. 그 당시에도 경찰들이 우리를 보호해 준답시고 폴리스라인을 만들어 따라 왔었지만 별다른 충돌 없이 무사히 행진을 끝낼 수 있었다.

잠시 추억을 접어두고 어제의 행진은 정말 감흥이 없었다. 사람들의 표정들도 흐린 날씨마냥 하나같이 어두웠고 분노에 찬 모습들이었다. 물론 분노를 안 가질 순 없는 상황이었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의문사한 장애인의 장례가 사망한 지 83일 만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아직 사망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생활하던 중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시 반복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 행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분노를 가졌을 것이다.

나는 행진 속을 빠져나왔다. 행진 대오를 벗어나 객관적 시선으로 우리들의 민낯을 보고 싶어서였다. 인도로 올라가 행렬의 맨 앞을 지켜봤다. 행진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맨 앞에는 경찰의 ‘소음측정’이라고 써진 특장차가 선도했다. 그 뒤로는 음향장비를 실은 노란 장애인차량이 뒤 따랐고 바로 뒤에 분홍종이배를 모자로 쓴 하얀 머리 대장님을 선두로 각양각색의 휠체어를 사람들이 일렬로 뒤를 따랐다. 행진 왼쪽으로는 연두색 야광 점퍼를 입고 방패를 손에 쥔 경찰대오가 폴리스라인을 형성하고 이들 행진대오의 병풍처럼 뒤따르고 있었다.

행진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행진대오가 갈 수 있는 길은 1차선뿐이었다. 노란 장애인차량이 멈추고 어느 분이 발언을 했다. 아마도 발달장애인의 부모인 것 같았다. 발언이 시작되었고 행진이 멈췄다. 그러자 맨 앞 소음측정 차량에서 요란한 경고방송을 해댔다. 소음측정이란 말이 무색하게 더 시끄럽게 떠들었다. 발언이 끝나고 행진이 재개 되었다. 여전히 그들은 심각하게 무표정한 모습으로 행진을 이어갔다.

인도 위에 사람들 또한 무표정하게 별 감흥 없이 행진대오를 힐끗 쳐다보며 바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행진이 지쳐갈 무렵, 전동휠체어를 탄 한 참여자가 경찰 방패를 세게 휠체어로 부딪치며 1차선으로 한정된 행진선을 넓히려는 시도를 했다.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찰나에 폴리스라인 뒤로 버스 한 대가 스쳐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칫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뻔 했었다. 행진 대오 안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나 또한 이런 행진에 참여하면서 폴리스라인에 바짝 붙어 그 라인을 넓히려는 시도도 해 봤고 이 과정에서 경찰들과 심하게 충돌한 경험도 많았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니 차도에서 벌인 내가 한 행동이 자칫 어느 한 사람을 위험 속에 노출시킬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도 위에 사람들 또한 그제서야 걱정 어린 시선으로 행진대오를 지켜보며 발걸음을 멈췄다.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뜩 철창 속에 갇힌 사자가 철창을 부수려고 달려드는 모습이 떠올랐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속에도 혹시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철창을 부수고 빠져나온 사자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준다. 우리들의 분노가 혹시나 이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야생의 맹수에게서 느껴지는 공포감을 주지나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행진은 언제나 정당했다. 아니, 정당할 수 밖에 없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 이전에 그 공간 속에 우리들을 제외한 지나가는 사람들의, 또는 교통을 방해 받은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우리들의 행진 속에서 끌어낼 수 있었을까?

아무리 내가 행진의 밖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 노력해도 내 팔은 어쩔 수 없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날의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행진은 우리들만의 리그로 끝나고만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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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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