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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담임교사를 맡은 독자로부터의 편지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4-17 1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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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했던 겨울 대지에 파릇파릇 새순이 돋고, 좀체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칼바람의 동장군 대신 눈부시게 내리쬐던 한줄기 햇살이 완연한 봄의 시작을 알리던 지난 3월 초의 어느 날.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같은 일을 해도 월등히 몰입도가 높아지는 새벽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해 한 편의 글을 집필하고자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의 위력을 매번 검증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본격적인 집필 전, 막상 특별한 내용이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난 몇 년을 그래왔듯 컴퓨터가 부팅되기 무섭게 습관처럼 먼저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런데 스마트폰과 각종 메신저 등 나날이 발전되어지는 통신 기술에 밀려 어느덧 업무용으로만 사용된 지 오래인 나의 메일함에 뜻밖의 편지 한 통이 와 있는 게 아닌가.

이 얼마 만에 받아보는 사적인(?) 편지란 말인가. 실로 오래간만에 마주한 업무 이외의 메일 한 통에 채 내용을 열어보기도 전에 지레 가졌던 놀라움과 궁금증도 잠시,

“안녕하세요. 이소나 칼럼니스트님”이라는 몇 글자의 제목에 나도 모르게 멈칫, 순간적으로 전해지는 긴장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해봐야 보잘 것 없고 형편없는 이야기들이 될 거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평범한 삶도 어딘가에 있을 그 누구에게 한 줄기 희망으로 닿았으면.’ 마음 한 켠에서 오는 욕심이 먼저 앞서 뛰어든 무대뽀 정신으로 칼럼니스트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지 이제 고작 3개월.

나름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진솔함을 담아 열심히 연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저 맡은 직분대로, 책임대로 정해진 날짜에 맞춰 성실히 글을 집필하고 업로드 하는 것이 전부일 뿐, 이제껏 한 번도 이를 토대로 또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누군가에게 ‘칼럼니스트님’이라는 정식적인 직함이 불리워졌던 적은 더더욱 없었기에 어느새 처음과는 조금 다른, 그러나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궁금증과 놀라움이 콩닥콩닥 나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후우...”

큭, 마치 쉽게 클릭해서는 안 될 기밀문서라도 가지고 있는 양 조심스러운 손길로 클릭한 편지. 그러나 어쩐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입가에는 빙그레 점점 더 환한 미소가 깊이 번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소심 덩어리, 트리플 A형인 나를 순간적인 긴장으로 몰아넣은 문제의 편지(?)를 보내주신 분은 뜻밖에도 지난 칼럼을 읽으셨다는 한 독자 분. 칼럼을 읽으셨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무척 감사한 일이건만, 정성스레 보내주신 메일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현직 3년차의 교사라 소개하신 독자분. 새 학기가 되어 담임을 맡게 된 반에 몸이 불편한 학생 한 명이 배정되었단다. 3년차에 접어들 때까지 제법 많은 학생들을 만나보았고, 대학 학부생 때나 때때로 이루어지는 교직원연수를 통해 장애 학생들의 통합교육에 대해 다루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늘 이론적으로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막상 담임을 맡게 되니 당황스런 감정이 먼저 일었던 것이다.

새 학기 첫 날 짧게 가진 학생과의 면담을 통해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원치 않는다던 학생의 대답을 듣긴 했지만 담임 된 입장으로 영 마음이 편치 않아 인터넷을 통해 조금의 정보들을 수집하던 중 우연히 내 블로그에 개재된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의 일화를 다룬 지난 칼럼 "나를 만든 8할은"을 읽게 되셨고, 참으로 감사하게도 칼럼 한 편을 다 읽은 후에는 한결 마음이 편해지셨단다.

본인이 어떻게 하는 것이 그 학생에게 가장 잘 해주는 일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하셨다. 앞으로 1년 가벼운 마음으로 그 학생을 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즐겨찾기 해놓고 종종 들를게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마무리 되는 편지 한 통을 꼼꼼하게 다 챙겨 읽은 나는 한동안 그저 멍하니 좀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내 두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과연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생각건대, 또 한 사람의 ‘변화’와 ‘움직임’을 느꼈기에 흐르는 기쁨의 눈물, 그 시작이 되어준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모르는 독자에게 느끼는 고마움에서 오는 눈물이었던 것 같다.

이미 한 차례의 칼럼을 통해 언급했던 바, 복지의 후진국이라 불리우는 대한민국에서 한 명의 장애인으로 살아가다보면 정말 갖은 악다구니를 다 발휘해야 간신히 내 밥그릇 하나를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낀 적이 무척이나 많다.

아니 바로 오늘날 이 시점까지도 역시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때로는 참고, 때로는 무시하고, 또 때로는 함께 싸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잖은가.

그래서 바꾸고 싶었다.

물론, 나 한 사람 핏발 세워 외치고, 나 한 사람 여기저기 들쑤신다 해서 몇 십, 몇 백 년 동안 고착화 된 세상이, 사람들의 인식이 손바닥 뒤집히듯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적어도 장애, 비장애를 구분 짓지 않아도 모두가 똑같은 ‘인간’으로 똑같이 다르고, 똑같이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변화를 맛보고 싶었다.

"괜한 고생 하지 마."
"어쩔 수 없어, 이미 안 되는 걸."
"오지랖도 넓다. 뭐 하러 사서 고생하냐? 누가 알아준다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숱한 비방이 함께 뒤따르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당장은 귀찮고, 힘든 일일지언정 그것으로 인한 아주 조금의 변화가 있기만 한다면 후대의 장애인들에게 조금 더 편한 세상, 진정 더불어 사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었고, 믿고 있기에 글을 쓰고, 알리고, 또 행동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쏟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상이 이러하니 다른 무엇도 아닌 나의 글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통해 이렇게 변화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사실을 느꼈을 때, 당사자인 내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감사합니다. 신체적인 장애가 있기에 그 누군가에게는 조금 부족한 듯, 모자란 듯, 또는 불안한 듯 보이는 행동일 수 있지만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해 주실 때에 저희들의 부족이 채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모양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조화를 이루는 퍼즐조각처럼 말이죠."

몇 시간 후, 감정을 추스르고 본래의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온 내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띠며 보냈던 답장. 그건 사실 나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조금은 늦더라도,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한 '더불어 사는 세상'의 참 뜻을 기리는 그 날까지 이 마음 이대로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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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소나 (dlthsk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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