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부터 내일 새벽까지 큰 눈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빙판길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하셔야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은사님과의 만남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의 어느 날, TV 뉴스 속 기상캐스터의 낭랑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일기 예보에 그만 어깨가 축 늘어지고 말았다.

“에휴! 그럼 그렇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몇 날 며칠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쾌청함을 자랑하다가도 어쩌다 한 번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내일은 꼭 날씨가 좋았으면’하고 생각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비나 눈 등의 악천후를 맛보게 되는, 일명 ‘날씨 머피의 법칙’이 또 한 번 정확하게 명중한 것이다.

오로지 집과 직장만으로 쳇바퀴 같은 나날을 반복하는 내가 이렇게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은 1년에 몇 번 없는, 그야말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인데 도대체 이 무슨 악연인 건지. 괜시리 아무 잘못도 없는 TV 속 기상캐스터에게까지 야속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속 당일. 소리 소문 없이 밤새 내린 눈의 여파로 세상은 온통 새하얀 이불 한 겹씩을 덮었고, 평온하던 거리에는 잔뜩 날을 세운 빙판이 앞다투어 조성되어 있었다. 불과 하루라는 시간 만에 어쩜 이리도 달라진 광경을 나타낼 수 있는지. 자연이 가진 놀라운 위력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 몸의 중심이 균일하게 실리지 못하는 까닭에 조금만 방심해도 이리저리 픽픽. 넘어짐이 곧 일상인 내게 하루아침에 온통 설원이 되어버린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서도 한 걸음 한 걸음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쌩쌩 불어 닥치는 칼바람도 소용없을 만큼 온 몸에 송골송골 굵은 땀방울을 잔뜩 매단 채 마침내 약속장소인 나의 모교에 도착했다.

“후우!”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가 주는 정겨움과 푸근함에 만감이 교차해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선생님이 계시는 교무실로 들어갔고, 일찌감치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선생님께서도 채 문을 다 열기도 전에 한달음에 달려 나와 환하게 웃으시며 반가움을 표시하셨다.

“왔어! 길이 미끄러워서 오느라 고생했지! 따뜻한 차 한 잔 하자.”

이윽고 선생님과 손을 꼭 맞잡고 도착한 인근의 한 카페 안. 존경하는 은사님과 함께 나누는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5년 전 어느 날, 학교를 떠나오며 호기롭게 했던 인사가 무색해 질만큼 얼굴한 번 비추지 못했던 부족한 제자의 지난 몇 년을 대신해 줄 여러 이야기들까지. 참 편안한 시간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한아름 부풀어 있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는지 잔뜩 심술궂은 하늘을 원망하며 행여 넘어질까 다칠까 한 발, 한 발 노심초사했던 불과 몇 분 전의 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카맣게 잊혀질 정도로 말이다.

“선생님, 그래서요. 제가요. 어쩌구 저쩌구…….”

예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는, 그 어떤 이야기도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는 선생님이 앞에 계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잠시의 틈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재잘재잘. 쉴 새 없는 이야기들로 지나온 시간들의 회포를 풀기에 여념이 없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껏 그 어느 누구에게도 쉽사리 꺼내놓지 못했던 마음속 어려움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포옥. 가장 편안한 선생님의 품에서 가장 편안하게 한껏 응석받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냥, 그냥 너무 힘들어요. 적어도 제가 장애인만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제 장애때문에 오늘처럼 이렇게 눈만 와도 서 너배는 더 고생해야 하고, 남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저한테는 엄청난 일이 되고, 저 정말 열심히 살고 싶은데, 그리고 열심히 살아 왔는데……, 세상이 너무 불공평 한 것 같아요.”

사실 지난 2014년은 갑작스레 겪어야 했던 안팎의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힘든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괴로워해야만 하는 시간들은 가면 갈수록 나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여야만 했을까.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나만 장애인이 되었을까.’하는 억울한 감정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그 감정. 하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 그 어딘가에 남아 울컥 치솟아 오른 그 해묵은 감정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매사에 나를 사로잡았고, 그 덕에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일의 원인을 내 장애때문으로 돌리며 하루하루 크나큰 원망의 불씨를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느 틈에 굵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한 자 한 자 힘겨운 이야기를 꺼내 놓는 내 모습에 한참을 묵묵히 바라보시며 귀 기울여주셨던 선생님은 곧 툭툭 내 어깨를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어이구, 우리 소나 고생 많았네. 많이 힘들었겠어. 그런데 소나야, 사람은 누구나 각자가 지녀야 할 삶의 무게가 있는 거거든. 네가 지금 힘들어 하고 있는 이 일들이 꼭 네게 장애가 있기 때문에 힘든 건 아니라는 거지. 선생님은 오히려 남들이 가지지 않은 아픔을 가지고도 항상 씩씩한 소나의 모습이 무척 자랑스러운 걸. 기운 내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소나는 잘 할 수 있어. 더 잘 할 거야.”

그리고는 스윽 눈물을 닦아주시던 선생님. 선생님의 이 말씀으로 인해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사는 건 누구나 힘들다는 것이다.

만약 나의 짧았던 생각처럼 내게 장애가 있어 내 삶이 이토록 힘들고 고달픈 것이라면 장애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일 매일이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는 자신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직장인들은 경제적인 부담으로, 가정주부들은 육아와 살림으로, 학생들은 학교에 학원에 나날이 늘어가는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 고민으로……. 아마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짐을 지고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다. 그것이 학업이든, 직장이든, 혹은 가난이나 질병이든 이는 장애의 유무와 관계없이 그저 누구나 겪어내고 있는 삶, 그 자체에서 오는 자신의 몫인 것이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백 프로의 완벽함, 백 프로의 행복으로 무장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비록 지금은 불완전하고 불충분할지라도 더 나은 내일, 각자가 추구하는 자신만의 삶의 목표를 위해 매일 매일을 뛰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8년 전, 겁 없고 철없이 뺀질뺀질.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어느덧 번듯한 직장인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 섞여 살아가고 있는 청년의 때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그 순간마다 끊임없는 용기와 격려를 불어 넣어주신 은사님의 그 말씀들이 내게 또 한 번 변화의 시작이 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틀이 되어준 것처럼 나 역시 단 한사람에게라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가져본다.

내 삶의 모든 불행은 나의 장애 때문이라며 잠시나마 가졌던 모든 원망의 싹들을 싹둑 잘라버리고 묵묵히 묵묵히 나의 삶의 무게를 힘껏 감당하며 힘차게 매일을 살아가야겠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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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나 칼럼리스트
한국성서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직장생활 중에도 수필, 동화,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습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동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사회복지학도로써의 다양한 관점, 그 밖에 평소 지니고 있었던 다양한 생각들을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의 경험담과 잘 배합하여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여담 형식으로 꾸밈없는 우리네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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