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느루 영원한 예술 전시 1. ⓒ정희정

■ 들키고 싶은 비밀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습니다. 비밀은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비밀이 됩니다. 그런데 들키고 싶은 비밀도 있습니다. 끈으로 꽁꽁 싸매 장롱 깊숙이 밀어 두었지만 누군가 발견해주었으면 하는 그런 것 말입니다.

지난 2월 28일 홍은 예술센터에서 무용단 ‘몸짓느루’의 공연전시가 있었습니다. 이 공연전시는 두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요. 먼저 ‘영원한 예술’을 주제로 예술작가들의 인터뷰를 팟캐스트(인터넷 사설 라디오) 방송으로 9회에 걸쳐 방송 공연을 하고, 28일에는 그 인터뷰어들의 개인 소장품들을 전시하였습니다.

이 전시에 참가하면서 저는 묘한 설레임을 느꼈습니다. 우연히 주은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럼 느낌 말입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서경선, 박수진, 최아름 안무가는 캐비넷 안에 참여 작가들의 개인 소장품, 작품, 엽서 등 일상이 스며들어 있는 물건을 넣어 두고 한지로 캐비넷을 봉했습니다. 그래서 전시를 보기위해서는 관람객이 손가락으로 한지를 송송 뚫는 최소한의 참가를 해야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캐비넷 안에는 작가들의 들키고 싶은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검지 손가락에 침을 살짝 발라 여기 저기를 찔러봅니다. 위쪽을 뚫었더니 작가 이야기는 아래쪽에서 무릎을 바짝 당겨 웅크리고 있습니다. 중간 쯤을 뚫었더니 눈썹을 치켜 세운 두건 소녀와 눈이 딱 마주칩니다. 구멍이 늘어갈수록 상상도 뭉개 뭉개 커지면서 그 사람이 더 궁금해집니다.

이제 나는 그 작가님과 ‘아는 사람’이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세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다음 전시가 기다려집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발견해주었으면 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몸짓느루 영원한 예술 전시 2. ⓒ정희정

■ 들키고 싶은 사소함

장애인들에게 들키고 싶은 비밀은 무엇일까요? 얼마 전 장애인 무용가 강성국씨와 담소를 나눈적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 물었던 말은 언제 어떻게 춤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용하는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작품(핏줄) 연습에 참여하면서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 만났던 선생님이 너의 움직임은 그 누구 흉내 낼 수 없는 너만의 고유한 움직임이라는 말에 자신의 몸과 움직임을 새롭게 바라 보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이런 질문 많이 받아보셨죠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씨익 웃으며 예. 아주 많이요. 그래서 이제는 자동적으로 대답이 나와요 라고 합니다.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장애인에게는 궁금한 것이 될 수 있겠지만 강성국씨에게는 그것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누가 물어보지 않아서 말하지 못했던, 들.키.고.싶.은.비.밀

만약 이 분이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나는 무엇을 궁금해 했을까요.

우리는 작년 독일에서 있었던 즉흥춤 워크샵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어떤 수업을 했고,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때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놀이로 서먹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을 5그룹으로 나누고 각그룹에 물병을 나누어 준 다음 손을 쓰지 않고 물병을 옮기는 작업입니다. 다음 날엔 같은 물병 옮기기를 4층에서 1층까지 공간을 바꾸어서 진행 했다고 합니다. 강성국씨는 4회 워크샵이 끝나고 3명 강사 중 마스터 강사로 뽑혔다고 자랑스럽게 말 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수업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학생들에 대해 얘기하고, 작품에 대해 얘기하고.....저는 이제 공연 활동은 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예술활동을 하는 분들과 만나면서 대리만족을 합니다. 그렇게라도 그 밥상 위 반찬을 집어 먹어 보고 싶습니다.

어떤 예술가는 사회와의 접점을 찾으면서 대면하는 사회문제를 예술 매체를 통해 풀어내면서 자신과 사회 그리고 예술 간의 균형을 맞추어 갑니다. 어떤 예술가는 감각을 통해 자기 몸에 체화된 개인적인 기억이나 이미지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강성국씨는 후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 공연 주제를 찾고 있는데 그게 여간 쉽게 떠오르지 않나봅니다. 역시 창작의 고통이란 달콤하지만 씁쓸한(bitter sweat) 작업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예술로 거대해졌다가 왜 예술가는 돈을 잘 못버는가에 대해 흥분 했다가 어제 만났던 내 소개팅 남자 얘기로 작아지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아닐까요. 들키고 싶은 비밀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 내면에 꽁꽁 쌓아둔 자기의 이야기. 일상의 이야기. 장애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해내는 슈퍼 장애인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평소에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 누가 물어보지 않아 말하지는 못했던 일상의 소소함들.

저는 그렇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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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건강운동과학연구실 특수체육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학 중 이며, 서울대학교 'FUN&KICK'에서 발달장애학생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체 표현에서 장애인의 움직이는 몸은 새로운 움직임이며 자기만의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다. 칼럼을 통해 발달장애학생들의 움직임과 영화 및 예술을 통해 표현되는 장애인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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