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나눈다.

장애를 갖지 않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서 설날은 즐거운 시간인 것 같다. 그런데 장애인들도 설 명절이 즐거울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즐겁지만은 않다. 이유가 뭘까? 자립생활 하는 장애인들은 활동보조 수급이 걱정이다.

우리들의 활동보조님들도 가족이 있다. 때문에 명절을 쇠러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활동보조가 꼭 필요한 나와 같은 장애인들 명절 연휴만 되면 손발이 묶이기 일쑤가 된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갈 수 있나? 안타깝게도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피노키오 체험홈의 친구는 10살 때 시설(장애인거주시설)에 들어갔다. 그에게는 어머니와 시집간 누님이 계시다고 한다. 지금의 나이 서른 한 살, 3년 전 시설을 나와서 체험홈 생활을 하고 있다.

며칠 전,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설이고 해서 그 기간에 아머니 댁에 방문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체험홈 담당자에게 “시설에 있을 때는 한번도 집에 보낸다는 말이 없었는데 그곳은 왜 그러냐?”고 항의 했다고 한다. 슬프게도 체험홈의 그 친구는 누나가 시집갈 때도 초대받지 못했고 누나와 어머니는 매형네 가족들에게 조차도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고 화를 냈다.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가족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말았다. 비단 그의 처지만 그런게 아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그와 비슷한 수모를 당했다고 말한다.

어떤 장애여성은 집에 손님들이 올 때마다 다락방에 숨어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 모르고 따랐지만 나중에 성장해서도 계속 그래야 했을 땐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비참해서 죽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우리 세대 때는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그렇게 살았다. 정도는 다르지만 나 또한 가족들에게 투명인간 취급 받은 기억이 있다. 10대 후반 여름에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피서 간다고 물놀이 용품들을 챙기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부러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비참해졌던 기억이 난다.

시설에서도 명절은 즐겁지 않았다. 내가 있던 지역이 강원도 철원이라 군인들이 와서 함께 놀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자원봉사 한답시고 라면박스 몇 상자 잔뜩 쌓아놓고 사진 찍자고 달려드는 꼬라지들을 볼 때마다 역겹고 구역질이 났었던 기억이 난다. 시설에서 설날 때면 떡국은 꼬박꼬박 나왔다.

어쨌거나 우리도 즐거운 명절을 맞이하고 싶다. 다행히 이번 설엔 아버지 댁에 방문한다. 어제 직장을 일찍 조퇴하고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을 샀다. 아버지의 연세가 연세인지라 건강식품을 준비했다.

사실 아버지는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우리 아버지도 여느 장애인의 아버지들처럼 장애를 가진 나에게 너무 매정했다. 무관심했다고 하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한때는 미웠다. 누나와 동생을 대하는 모습과 나를 대하는 모습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어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시설에 있을 때 아버지가 면회를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보였던 아버지의 안경너머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문뜩 든 생각은 이런 거였다.

‘그래,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나를 어떻게 사랑해 줘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시설을 나와 자립생활을 하면서는 명절 때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꼬박꼬박 아버지 댁을 방문한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대할 땐 참 무뚝뚝하다. 말씀도 몇 마디 안 하신다. 동생과 함께 잡에 가면 “응, 정혁이 왔어?” 설 지나고 집으로 갈 때면 “잘 가고 건강하게 잘 지내!” 이게 다다.

많은 장애인들이 설이나 추석 명절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건 사실이다. 가족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고, 활보 수급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만큼은 어떤 식으로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면절 기간만큼은 활보수당을 더 쳐주든지 해서 설날이나 추석에 최소한 떡국과 송편은 먹어야 명절 기분도 낼 수 있고 우리도 즐거운 명절이 돼야 하지 않는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해 즐겁고 향복한 일들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