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일드' 중

와일드의 아름다움

영화 와일드에서 셰릴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붙들고 있던 자신의 삶을 놓아버린다. 마약에 중독되고 아무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며 4년 반의 시간을 보낸다. 그런 시간이 있다. 맞고 또 맞고 맞아 쓰러진 몸뚱아리를 애써 힘내 비틀거리는 오른발로 땅을 깊어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때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된 어느날 셰릴은 그렇게 바닥에 내팽겨진 자신을 일으켜세울 결심을 하고 PCT 트레킹을 떠난다. PCT(Pacific Crest Trail)는 미국의 4,295km 도보여행 코스로 극한의 추운 고산지대, 아홉개의 산맥과 사막, 끝없는 평야 등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환경을 통과해야만 완주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일명 ‘악마의 코스’라고 불린다.

셰릴은 이 외롭고 고독한 트래킹을 엄마(바비)와 함께 보냈던 시간과 함께 한다. 바비는 알코올중독자 남편의 폭력에도 딸 셰릴와 아들 그렉에게 밝은 웃음과 긍정으로 남매를 키운다. 전날 남편에게 흠씬 맞고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요리를 하는 바비에게 셰릴이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아요?”라고 묻자 바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름다운 순간에 너의 모습을 기억해. 그리고 항상 그 모습을 잊어버리지 말고 붙들고 살아. 너의 아름다움을 찾아.”

영화 '와일드' 중

셰릴은 PCT 트레킹을 완주해나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이론이 있다. 마음은 원래 신체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신체적 경험에 의해 마음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셰릴의 혹독한 PCT 트레킹 시간은 그녀의 몸에서 아름다움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체화된 아름다움을 기억하게 되며 그 아름다움은 그녀가 왼발을 바닥에 딛고 일어서게 한다. 체화된 아름다움은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어 마음의 기저면을 형성 하기도 한다.

너의 아름다움

발달장애학생 수업을 할 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수업이 이 친구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앞으로 마주하게될 삶에서 내 수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크게는 지금 수업시간에서 배우는 인라인 스케이트 기술, 줄넘기, 티볼 등의 기술이 이 친구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365일 중 줄넘기를 하는 시간이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없듯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와 네가 함께 지나는 시간이고, 그 시간에 체화된 마음이며 스며든 아름다움이다.

너는 직업재활센터에서 일을 마치고 운동을 하러 올때면 손톱밑에 까맣게 때가 끼고 손가락이 헐어있다. 고작 22살인 너에게 그 일이 힘들고 짜증날 법도 한데 왜 그렇게 나를 보고 반갑게 웃어주는지.

그런일이 있었다. 네가 강사실 테이블 위에 있던 쿠키가 너무 먹고 싶어서 먹었나보다. 그걸 알게된 강사선생님이 너를 호되게 꾸짖었지. 너의 잘못도 있었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의기소침해 있는 너를 보니 내 마음이 속상해지더라.

꾸짖은 강사선생님이 너무 심하게 한 것 아니냐고, 뭐라고 했었냐고 채근하는 나에게 너는 물끄러미 얼굴을 들어 아니에요 제가 잘못해서 그랬어요. 하고 방긋 웃어준다. 그리고 양팔을 앞뒤로 흔들며 운동하러 가요 하고 씩씩하게 앞서 걸어간다.

너의 뒷모습을 보고 다짐한다. 함께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가자.

나는 믿는다. 그 아름다운 순간들이 네가 삶을 살아내면서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반짝이는 별 빛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나에게도.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정희정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건강운동과학연구실 특수체육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학 중 이며, 서울대학교 'FUN&KICK'에서 발달장애학생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체 표현에서 장애인의 움직이는 몸은 새로운 움직임이며 자기만의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다. 칼럼을 통해 발달장애학생들의 움직임과 영화 및 예술을 통해 표현되는 장애인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