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도 한 장 찍어 주슈!"

아이를 3년 만에 주간보호센터에 데려다 주고 내려오는 길. 주간보호센터라도 다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잘 적응해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데리고 갈 때보다 주간보호센터에 아이를 두고 내려오는 마음이 한층 더 움츠려들고 무겁기만 했다.

착잡한 마음 마땅히 둘 곳도 없이 걷고 있는데, 전봇대에 얼기설기 붙어있는 전단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전봇대뿐만 아니고 벽, 심지어 가정집 대문까지 전단지들은 거리를 횡포하듯 껄렁거리고 있었다.

그보다 더 심란스러운 건 전단지만 떼어가고 남은 자국들이었다. 전단지 떼어낸 자국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초록색테이프로 온 거리는 시퍼렇게 멍들었다.  

방법이 없을까? 저렇게 지저분한 걸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나? 거리는 깨끗하고 쾌적해야 한다. 어쨌든 누군가는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었다.

구청 게시판에라도 올릴 요량으로 몇 군데 사진을 찍는데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가 전단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만 찍지 말고 내 것도 찍어주슈.”

"아! 네……."

얼떨결에 받아들며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지저분하다고 투덜거리던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그렇구나, 이 곳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구나.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사진을 저장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지저분하다고만 여겼던 테이프 자국에는 삶의 아픔이 찬서리 마냥 허옇게 서려있었다. 테이프 자국마다 아려오는 통증은 내 팔뚝의 상처로 전해졌다.

자폐성장애인인 내 아들은 화가 나면 내 팔뚝을 꼬집었다. 3년 동안 아무데도 못 다닌 가장 큰 이유다. 화가 나면 꼬집고 물어버리는 공격성이 아이를 집에서 한발자국도 못나가게 했다.

아이한테 꼬집힌 팔뚝은 결국 거무죽죽한 흉터를 남겼다. 흉터로 인해 무더운 여름이 와도 시원한 반소매 옷 한번 제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자식의 허물을 남들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라고 할까. 그로 인해 나에게 여름은 참 견디기 힘든 계절이 되었다.

 

내 아이를 통해 보면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발달장애인들은 방어능력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꼬집으면 꼬집히고, 물면 물리고, 때리면 맞고, 밀면 넘어지는 무방비 상태다. 아무리 공격성이 강한 발달장애인이라도 누군가의 무력 앞에서 피하거나 대드는 일은 거의 없다.

공격성은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늘 5분 대기조로 불리며 자녀가 있는 근처에서 서성거린다. 아이가 기분이 안 좋거나, 문제행동이 있을시 에는 얼른 가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러면서 엄마들은 말한다, 사는 게 전쟁이라고. 자녀가 이용하는 센터에서 전화라도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센터 번호가 뜨면 "여보세요!"가 아니고,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라며 자동 응답기처럼 말한다.

 

한번 생긴 흉터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상처가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리 뜨겁게 열심히 살아온 삶이라할지라도 누군가한테 보기 싫은 모습을 남기고 싶지가 않았다.

내 아이가 다른 사람한테 남긴 상처는 온전히 내 마음에 흉터로 남는다. 그렇다고 아무데도 안보내고 집에서만 데리고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암울하고 힘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초록색 테이프를 떼어 보았다. 진물처럼 끈적끈적한 삶의 흔적들은 내 팔뚝의 흉터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이면 팔뚝을 내놓고 시원한 옷을 입고 싶다. 나는 늘 고민한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리고 내 아이가 여기저기 남기는 상처들을 보듬어야 한다. 나는 엄마니까.

그러나 상처가 없으면 흉터도 없다. 내 아이가 엄마 없이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상처를 남기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무리 더워도 푸른 옷소매 한 번 걷어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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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명 칼럼리스트
발달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인식개선 사업 차원으로 시내 고등학생, 거주시설장애인, 종사자들한테 인권 교육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당사자의 삶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에 근거해 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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