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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도 현장을 지키는 장애인지도자의 '소명'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2-03 09:13:30
이제 계절은 겨울을 벗어나 봄으로 접어들 준비를 한다. 이미 땅 속 깊은 곳에서 잠자던 뿌리가 깨어나 생수를 마시고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설렘과 기대로 희망의 봄을 디자인하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아직도 쇠끝 바람이 아침저녁을 춥게 만들고 있음에도.

지난 1월 31일,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신남리에서 느낌이 있는 시각장애인 목회자를 만났다. 그는 우리 사회가 벌써부터 외면하고 있는 출소자, 약물 또는 알콜에 빠진 사람들, 몇몇의 전자발찌를 찬 남성들과 고락을 함께 하며, 치유와 훈련으로 그들의 정신을 리모델링하여 다시 가족들과 사회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받은 초청장에는 '생명의 교회 창립 26주년 기념 및 위임목사, 장로 장립식'이라고 적혀 있어서 큰마음 먹고 그 곳으로 달렸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제법 규모가 있는 2층 건물이 완공을 앞두고 있었고, 많은 손님들 가운데 치유와 훈련을 받고 있는 남성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낯익은 안일권 목사가 반색하며 나를 맞아 주었다.

올해 나이 69세의 안일권 목사는, 젊고 건강할 때는 국제상사에서 총망받던 엘리트 직원이었고, 의류 부속품 무역을 할 때는 돈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벌었던 사업가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베제트병에 의해 실명을 하게 되었고 재산과 명예가 수증기처럼 모두 증발하여 가난과 상처를 짊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참고로 베체트병이란 전신의 혈관에 염증을 나타내는 질환 중 하나로, 증상으로는 만성적인 궤양이 구강과 성기에 자주 재발되고 눈과 피부 등에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는 질병이다. 터키의 피부과 의사인 훌루시 베체트(Hulusi Behcet)선생이 1937년에 구강과 성기에 반복적인 궤양이 생기고 눈에 염증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환자 2명을 보고하면서 유래됐다. 베체트병은 지중해 연안, 중동지방 및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극동지방에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출처:Daum 아이템 지식)

베체트병으로 인해 적지 않은 세월을 방황하며 헤매던 그는 종교적 소명을 발견하고 신학의 길로 접어든다. 그 때부터 출소자들과 약물 중독자들을 불러 모아 치유와 훈련을 시작했고,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가서 재소자들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는 일을 계속했다.

서울 삼선교 근처 작은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였기에 느닷없는 난동과 돌발 행동으로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으며, 사람의 수가 점점 불어나 도저히 서울에서는 이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가평의 어느 마을에서, 횡성의 폐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이어 갔으나 지역 사회와의 갈등은 늘 숙제로 따라 다녔다. 그런 가운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약물의 수렁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직장에서 거듭난 삶을 시작했고, 과거보다 더 크게 성공한 사람도 여럿 나타났다.

또 다시 기거할 장소를 옮겨야할 위기를 맞이하게 될 즈음에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약물에 빠졌던 중년 신사가 치료와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기념으로 무려 3,300평의 넓은 땅을 기증하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안 목사는 동분서주하며 모금을 시작했고 멀리 미국으로 날아가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열심히 모금 활동을 벌여 건축의 기반을 조성했다.

드디어 2009년에 첫 삽을 떴고 설계에 따라 작업을 이어 갔으나, 시공사의 횡포, 천재지변 등이 겹치며 빚더미에 올라앉은 안 목사는 민 형사적인 처벌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던가! 도처에서 선한 손길들이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보탰으며, 이 곳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이 서슴없이 호주머니를 털어 비록 더디기는 해도 차근차근 건물이 세워져 갔다.

또한 현재 훈련 중에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돌을 쌓는 일, 창호를 시공하는 일, 실내 인테리어 등이 자연스럽게 공정에 반영되어 약 90%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 26년 세월을 눈물과 고생으로 살아온 안일권 목사! 그는 인생 2라운드를 신앙적 소명으로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정부나 공공 영역에서 의무를 부여하지도 않았지만, 한 번 먹은 마음을 바꾸지 않고 지금껏 외길을 걸어왔다.

엄살이 심하고 핑계가 많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안일권 목사가 지닌 소명이 게으른 나의 삶을 마구 꾸짖었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모두 사람이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다. 이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으나, 따르고 싶은 인물은 찾기가 어렵다. 초심이 흐려지고 시류에 편승하며 권모술수를 능력으로 포장하는 기술자는 넘쳐 나지만, 진정성과 헌신하는 자세로 이웃을 보듬는 리더는 절대 부족하다.

사회 통념을 벗어나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안일권 목사에게 와서 치유와 훈련의 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 멋지게 활약하는 풍경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또한 그들이 안 목사를 큰 형님으로, 아버지로 깍듯이 모시는 모습은 경의롭기까지 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소명을 선물로 여기며 소중히 지키는 안 목사가 부럽기까지 했다.

올봄에는 진한 소명을 품은 장애인 지도자들이 푸르게 커 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장애인복지 현장의 묵직한 짐들을 용기 있게 짊어질 일꾼도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래서 행복하게 봄을 누리며 자립의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소망해 본다.

69세의 청년 안일권 목사가 봄의 길목에서 귀한 깨달음을 내 가슴에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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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유석영 (binson35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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