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농아인’이다. ‘청각장애인’은 장벽이 느껴지는 이름이고, ‘농아인’은 또 다른 민족으로 느껴지는 이름이기에.

자라오면서 줄곧 나를 소개할 때마다 따라 오는 이름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늘 소개해야만 했었다.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러니 하실 말씀은 종이에 적어 주세요."

이 말 한마디는 세상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의 유행어가 되었고, 나는 종이와 펜을 쥐고 자라왔다.

‘청각장애인’을 ‘농아인’으로 개명하는 데는 ‘수화’가 큰 힘이 되었다. ‘수화’를 모르던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많은 장벽이 보였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가끔씩 보이는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는 있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적지 안내 자막단말기는 없었다. 시내 번화가 카페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메뉴판은 왜 없는지. 그렇게 늘 ‘없다’는 의미에만 치중하며 살았다.

그러나 20살이 되던 날부터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 ‘언어’에 대한 왠지 모를 반가움과 기쁨이 교차하였다. 그 언어는 ‘수화’라고 했다. ‘수화’를 알기 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았을 때 그 느낌은 천지차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면 같은 맥락인데, ‘수화’를 사용하기 전의 내 얼굴은 늘 어둡고 차가워 보였지만 ‘수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의 내 얼굴은 부드러워지고 밝아졌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돌아보는 데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수화’보다 ‘구화’를 우선시했던 부모님도 내 변화를 지켜보고 내 ‘언어’를 차츰 인정해주시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그 기쁜 마음은 잠시, 현재 ‘한국수화기본법’은 여전히 안갯속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수화’를 만나고 나서 느꼈던 기쁨을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졌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은 농아인의 제1언어인 ‘수화’를 방송언어로 활용하여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모든 농아인들에게 정말 전달하고 싶은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여 미디어 접근권을 보장하는 아주 보람찬 업무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불 꺼진 정보사회에서 소외되기만 하던 농아인들이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경기농아방송’을 만나서 나의 열정처럼 뜨겁고 환한 방송용 조명같이 빛나는 정보를 제공받아 생겨나는 기쁨 속에 행복한 소통을 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모든 '농아인'은 제각각 자신만의 언어로써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농아인들은 ‘수화’로 소통하면서 ‘通(통할 통)’의 기쁨을 그들끼리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수화'는 우리에게 어떠한 선물을 주고 있는지를 마음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화'로 소통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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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샛별 칼럼리스트
경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농인 엄마가 소리를 알아가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수어와 음성 언어 사이에서 어떤 차별과 어려움이 있는지,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일상 속에서 잘 풀어내는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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