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트 무용단의 장애인복지재단 무용교육지원사업 결과 장면. ⓒ정희정

진공의 공간을 떠돌던 몸은 웜홀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얽히고 겹친 공간에 시간이 통과하면서 투명한 크리스탈 와인잔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깨지 듯 시간이 부서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터 스텔라에서 쿠퍼는 겹쳐진 3차원 공간에서 흩어진 자신의 시간들과 마주한다. 쿠퍼는 자신과 시간 사이의 얇은 반투명 막을 사이에 두고 닿을 듯 하지만 결코 직접 닿을 수 없는 과거에 가늘고 미세한 진동을 보낸다. 쿠퍼는 웜홀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신 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닐까.

섬광같이 스치거나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어디선가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는 데자뷰는 어쩌면 내 안의 3차원 웜홀에서 보내오는 진동일 지도 모르겠다.

시공간의 뒤틀림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경험과 시간은 몸을 통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2014년 10월 29일 관악구 지하 마루무대에서 트러스트 무용단의 즉흥무용 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은 15년 동안 장애인복지재단의 무용교육 지원사업을 해온 트러스트 무용단(김형희 단장)의 수업 결과 발표회였다.

장애아동과 함께 한 수업 결과는 종이가 아닌 트러스트 무용단원들의 몸 텍스트에 기록되어 있었다. 무용수들은 라이브 일렉트로닉 첼로와 피아노 음악 진동 주파수에 반응하여 경험의 시간들을 몸 움직임으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인터 스텔라’ 3차원 웜홀 속으로 들어간 쿠퍼의 시간여행을 관람하듯 무용수들이 탐험하는 과거와 현재의 3차원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공연은 마루무대에서 진행되었다. 마루무대는 관객과 공연자가 평등한 시선을 가지게 된다. 춤추는 순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이 없어지고 다른 색깔의 개인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 마루무대로 표현한 듯 하다.

즉흥 무용은 미리 정해놓은 안무를 연습하여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느껴지는 영감을 몸 움직임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순간 느껴지는 영감은 무용수 몸 속에 녹아있는 시간의 진동이며, 즉흥 무용은 그 진동의 반응이다. 트러스트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촘촘한 씨실과 날실의 교차처럼 잘 엮여 바람에 흘러가고 있었다.

무용수들은 장애인 수업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던 것일까

대화를 주고 받듯 한 무용수의 움직임에 또 다른 무용수가 반응하여 움직인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 무용수가 벌떡 일어나 오른팔을 들고 무대 안으로 뛰어 간다. 무대에서 춤 추고 있던 여자 무용수는 살짝 무릎을 굽혀 남자 무용수의 옆구리 사이를 스치면서 그의 허리를 잡는다.

접촉 하는 순간 그들의 에너지는 서로에게 전이되어 그들만의 춤이 일어난다. 귓속말을 주고 받는 것 같다. 움직임 에너지 진동은 모서리에 앉아 있던 무용수를 움직이게 한다. 이 에너지를 받은 키 작은 여자 무용수는 일어나 고개를 낭창 낭창 움직이며 무대 가장 자리를 빙 빙 돈다. 무용수들의 동작은 무척 독특했지만 일상적이다.

장애인 무용 수업을 하면 꼭 이와 같은 느낌이다. 그들은 독특하다. 하지만 나와 다른 것은 없다.

어떤 남자 무용수는 목마를 탄 채 관객들을 향해 바이 바이 인사를 하듯 손을 흔들며 무대를 걸어다녔다. 관객석에서 키득 키득 웃음 소리가 들였다. 무용수는 그런 관객의 반응이 재미있나보다. 관객은 무용수를 관람하고, 무용수는 관객을 관람한다. 선생님은 학생이 되고, 학생은 선생님이 되듯.

공연 중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목소리의 사용이었다. 난데없이 한 무용수가 해독 할 수 없는 마치 일본어를 따라하는 듯한 조어를 내뱉는다.

"와. 타. 니. 카. 마. 스. 디. 이. 히. 마 스. 데. 리. 프"

오른쪽 첼로 옆에 있는 무용수가 이에 반응하여 답한다.

"시. 리. 히. 비. 이. 트. 차. 테"

두 명의 무용수는 네 명이 되고, 여섯 명이 된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소리는 움직임이 되기도 하고, 소리로 되받아 쳐지지기도 한다. '소통’은 반드시 다수가 약속한 ‘언어’로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장애인예술교육사업을 하면서 트러스트 무용단이 내놓은 결과가 이것이 아닐까. 고유한 소통방법.

우리는 늘 소통에 목말라 한다. 말이라는 것이 소금물을 들이키듯, 할 수록 갈증을 더 심하게 끌어 당길 때도 있다. 소통과 공감는 웜홀 속 3차원 세계의 흩어진 시간의 진동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트러스트 무용수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나의

"히. 피. 카. 데. 조. 교 "

트러스트 무용단 장애인복지재단 무용교육지원사업 결과 발표 모습. ⓒ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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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건강운동과학연구실 특수체육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학 중 이며, 서울대학교 'FUN&KICK'에서 발달장애학생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체 표현에서 장애인의 움직이는 몸은 새로운 움직임이며 자기만의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다. 칼럼을 통해 발달장애학생들의 움직임과 영화 및 예술을 통해 표현되는 장애인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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