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으로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이 많았던 2014년이 지나가고 2015년의 해가 뜬지 벌써 열흘이 훌쩍 넘어섰다.

다른 사람들은 새해 계획 세우기 바빴겠지만 정작 나는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지난 열흘 이상을 흘려보냈다. 2014년과는 달리 올해는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는데도 말이다.

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일을 덜컥 맡아 버렸다. 작년 12월, 우연히 만난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제안을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다름 아닌 센터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 체험홈 입소 체험인들 상담과 센터의 장애인활동가 멘토 역할인 것이다.

이러한 제안을 받고 몇일 고민했다. 센터에서는 나의 경험을 체험홈의 자립생활체험인들과 경험이 짧은 센터의 장애인활동가들에게 전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자립생활 경력도 올해로 12년째다. 강산이 한번 바뀌었다. 아무것도 없는 무주공산일 때 시작한 자립생활이었다. 맨몸으로 장애인생활시설을 뛰쳐나와 아내와 함께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을 거부하기만 했던 이 사회 속에서 살아내려고 무던히도 발버둥을 쳤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었다. 센터의 제안을 받고 2, 3일 동안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생각해 봤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알려 줄 수 있을까? 지금의 환경과 12년 전의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0과 1의 차이랄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당시 아내와 난 제기동에서 방 한 칸 얻어 살았다. 저녁 늦게 둘이서 산책하다가 집에 들어가 짤 때 쯤, 길가는 남녀 한 쌍의 연인들을 잡아서(잡는다는 표현은 부탁한다는 얘기^^) 활동보조를 부탁하기도 했고, 아침이면 건장한 남성을 잡아와서 아내가 휠체어에 탈 수 있게 한다든지 등.

그 당시에는 활동지원제도가 없었다. 있었다면 자립생활센터가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일자리 창출 제도를 변형해 활동보조인화 시킨 하루 8시간(오전 10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활동보조가 있었고, 우리부부는 아침 3시간, 저녁 3시간 이렇게 사용했다.

다시 12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싶다. 하지만 시설에서 살래? 지역사회서 살래? 한다면, 나는 아무리 어려워도 지역사회를 선택할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금의 장애인자립생활은 여건과 기회 면에선 예전보다 나은 환경이다. 물론 아직까지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등 까칠한 면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하겠다는 의지와 용기만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심한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자립생활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노키오는 나에게 그런 점을 요구한 것이다. 자립하려는 의지를 체험홈의 체험인들에게 심어주기를 원한 것이다. 덜컥 수락해버린 이유도 그거였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하기론 했는데 의욕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연말에 닥친 일련에 죽음들 때문인 것 같다.

박홍구 동지와 종훈이 형님의 죽음. 공교롭게도 우리가 기쁘게 보내야 할 날에 모두 돌아가셨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함께 장애인의 권리와 자립생활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우처럼 같이 싸웠던 동지들의 죽음은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삶에 대해서 약간의 허무감을 느끼며 새해를 맞이한 것이다. 아내의 죽음도 내겐 큰 충격이었지만 그 당시엔 너무나 큰 슬픔이어서 그것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그런데 이번 지인들의 죽음은 삶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졌었다. 어쨌거나 산 사람은 산다고 내 감정은 그런지는 몰라도 여전히 잘 먹고 잘 놀고 잘 싼다.

아무튼 새해가 밝았고 세월은 흐르고 있다.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하고자 하는 일은 하고 있을 것이다. 인권강사 일도, 에이블뉴스 칼럼 쓰기도, 피노키오센터에서 새로 맡은 일도 죽기까지는 이놈의 발발이 근성은 못 버릴 것 같다.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내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고 싶다. 착실하게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맡은바 소임은 다 하려고 한다.

2015년,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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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혁 칼럼리스트
현재 하고 있는 인권강사 활동을 위주로 글을 쓰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느꼈던 점, 소통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융화되기 위한 환경을 바꾸는데 필요한 고민들을 함께 글을 통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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