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은 대화 중에 화장실에 다녀오게 되는 경우 그냥 혼자 조용히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나, 화장실 다녀올게” 라는 수어를 하고 간다.

보통 청인들의 문화에서는 이럴 경우 혼자 조용히 다녀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굳이 상대방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농인들도 혼자 조용히 다녀오면 되는데 꼭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이런 농인들의 수어를 보면서 생소하고 어색했다. 그러나 농인들과 만나면서 왜 그런 수어를 하고 가야 하는지 알게 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래 전 농인 공동체에서는 농인들 상호간에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지금은 휴대폰으로도 실시간 연락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같이 대화를 나누다 누군가 한사람 없어지면 그 사람이 어디 갔을까 궁금해도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다행이 자리를 비운 농인이 빨리 돌아온다면 문제가 없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게 되면 남은 일행은 영문을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먼저 가도 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디를 잠깐 다녀오느라 자리를 비우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직접 대면하지 않고서는 대화를 나눌 길이 없었던 농인들 스스로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농사회의 문화 중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의아하게만 생각했던 나도 어느덧 농인들과 같이 있다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면 왜 자리를 비우는지 꼭 수어로 이야기 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오래 전 열악했던 농인들의 현실을 반영하여 탄생한 문화지만 자신을 염려하는 상대방을 배려하고자 했던 농사회의 이와 같은 문화가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되며 잘 계승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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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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