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 한국 정부가 비준한 법이다.

이 협약 제4조 일반 의무 1-다에서 ‘모든 정책과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고려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든 사회적 개발에서 장애인만을 위한 특별한 정책을 강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책에서 장애인을 고려하라는 말이다. 즉, 장애인복지과에서 장애인 정책을 전담하여 별도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책 입안시 장애인 고려를 상시화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정책과 예산에서 장애 영향평가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사회 개발을 포괄적 개발이라고 한다. 그 목적은 장애 주류화인데, 장애인이 소외되지 않고 차별 없이 평등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포괄적 개발을 우리는 보편적 정책이라고 한다. 장애인도 포함하여 이용 가능한 것이 보편적 정책이다.

보편적 복지라고 하면 선별적 복지의 반대개념으로 중증장애인 복지가 축소될지 모르겠으나, 보편적 정책이라고 하면 중증장애인도 포함하도록 하는 정책을 말한다.

장애 인지 예산을 쉽게 이해하려면 성 인지 예산을 생각하면 된다.

예산편성과 집행과정에서 남녀별로 미치는 효과를 고려해 성차별 없이 평등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 제도를 성인지 예산이라고 한다. 여성과 남성의 요구를 고르게 감안해 의도하지 않는 성차별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제도는 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유엔 세계여성대회에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의 주요 의제로 채택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기 시작했다.

성인지 예산의 시행 방법은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양성평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예산 편성·집행에 반영하는 것이다.

추진근거는 국가재정법 제16조(예산의 원칙), 제26조(성인지예산서의 작성), 제57조(성인지결산서의 작성), 제68조의2(성인지 기금운용계획서의 작성), 제73조의2(성인지 기금결산서의 작성) 등이다.

장애 인지 예산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면 장애인 인구수가 5%일 경우 예산의 5%를 장애인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은 근로자이고, 남성이고, 30대이고,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이고 등등의 속성을 모두 비율로 계산하여 그 비율별로 예산을 요구한다면, 예산의 총합은 100이 아니라 1000이 되어도 부족할 것이다.

장애인이 필요한 각종 사업을 요구하는 것을 모두 다 수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예산의 형평상 우선적인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예산의 형평이 깨어지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의 예산이 적정한가를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을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차별이 없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장애인은 근로의 기회가 부족한데, 근로자를 위해 예산을 다 사용하기로 한다면 장애인은 그 예산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자를 위한 사업 중 형평을 맞추기 위해 장애인의 근로 기회를 제공하는 데도 예산이 사용되도록 하여 형평을 맞추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예산을 별도로 지원할 필요성이 있는지, 영향에 격차가 나타나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고, 성과관리를 하는 방법이 인지 예산이고 영향평가이다.

특정 사업이나 예산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일일이 판단할 수 없으므로 격차가 나거나 취약계층을 위해 영향평가를 통해 조정하는 것을 사회적 공감대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소외계층을 고려하는 것을 부문인지 예산이라고 한다. 성인지, 환경인지, 고령인지 예산 등이 이에 속한다.

인권포럼에서 주최한 장애 인지 예산 서울설명회 자료집에서 김용탁은 장애 인지 예산 사업 선정 기준을 5단계로 제시하였다.

첫째, 1단계로 장애 인지 예산제도 대상사업 선정위원회에서 대상사업의 선정기준을 제시한다. 선정기준은 학계와 장애계의 자문을 거쳐 수립해야 할 것이다.

둘째, 2단계로 일선 부서에서 장애 인지 예산제도 대상사업의 후보를 제출한다. 일선 부서에서는 장애정책 종합계획을 검토하고, 담당 사업들의 장애평등 영향정도, 장애분리통계의 구축정도 등을 고려하여 선정위원회에서 제시한 선정기준에 따라 대상사업이 될만한 후보 사업을 선정하여 선정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셋째, 3단계로 선정위원회에서 일선 부서에서 제출한 대상사업 후보에 대해 적절성을 검토한다. 이 때 반드시 학계와 장애계의 참여를 보장하여 내실 있는 심의가 되도록 해야 하며, 1차 선정결과를 일산 부서에 통보해야 한다.

넷째, 4단계로 선정위원회와 일선 부서 사이의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 의견수렴 과정은 반드시 공식적인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선정위원회는 일선 부서의 의견이 납득할 만큼 합리적인 경우에는 이를 최대한 수용해야 하지만, 장애 인지 예산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의견 불일치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일선 부서에 대한 설득 노력도 필요하다.

다섯째, 5단계로 장애인지 예산제도 대상사업을 확정한다. 선정위원회와 일선 부서 사이의 의견 조정 과정을 거친 결과에 대해 선정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대상사업을 확정하는 것이며, 이 때에도 학계와 장애계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마지막 단계인 5단계에서도 선정위원회는 대상사업의 수정·변경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등이다.

장애 인지 예산 대상이 선정되면, 장애관련 통계가 구축가능한지 해당 부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기 구축된 통계도 있을 수 있고 현재는 없지만 구축 가능한 것도 있고, 구축이 불가능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성과지표를 정하고, 인지에산서를 작성한다. 사업 시행 후 사업평가를 하여야 한다.

장애 인지 예산과 관련해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을 중심으로 장애인 단체들이 연대하여 지자체 조례제정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는 장애 인지 예산 도입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여 분석 틀을 제시하였고, 서울시립대학에서는 서울시 장애 인지 예산 도입방안을 연구 중이다.

서울시 성북구는 성북구 인권조레를 제정하여 2012년 7월 19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조례 4조에서는 구청장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구청장은… 인권을 보장·증진하기 위한 시책 및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추진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제6조 인권증진 기본계획 수립에서는 기본계획의 내용으로 장애인 등 인권취약 계층의 인권증진 방안을 담도록 하고 있다. 제7조에서는 매년 인권계획을 수립하고 평가하도록 하고 있고, 8조에서는 공청회를 의무화하고 있다.

제9조에서는 인권지표를 개발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10조에서는 인권교육 의무 대상자를 정하고 있다. 제11조에서는 인권센터를 설립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12조에서는 인권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15조에서는 인권백서를 발간하도록 하고, 제3장 제16조에서는 인권위원회를 두고 있다. 위원회 구성에서 10명 중 장애인을 4명 이상 두도록 정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법률, 예산, 사업이 포함되므로 성북구는 실질적으로 장애 인지 예산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에산만이 아니라 법률 제정에서 장애인에게 불리하거나 차별하는 사항이 없는지 검토하고, 공공건물 건축에서 장애인 인지 건축을 함으로써 편의시설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한 각종 시책을 시행함으로써 오히려 더 종합적인 장애 인지 즉, 포괄적 정책을 담고 있다. 이로써 장애인 사회참여를 정치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지자체와 성북구 조례의 차이점은 인권교육이나 센터를 설치하는 것은 같지만 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장애인 당사자를 참여시키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 인지 예산제를 실시하면 어떤 효과가 기대되는 것일까?

첫째, 장애관련 정책을 복지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하여 특정 부서에만 사업과 예산이 집중되다 보면 장애인의 사회통합이라는 측면보다 시혜와 동정적 관점에서 예산이 집행되어 다른 부서에서는 장애인의 격차를 외면해 버리게 된다.

둘째, 한 부서에서 아무리 장애인의 격차를 해소하고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여도 다른 부서의 사업들에서 더 많은 격차를 생산하므로,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셋째, 주민 참여의 주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장애인이 사업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사회와 지역사회에서의 환경적 장애를 해소함으로써 다름을 인정하고 장애인에게도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시책을 시행할 수 있다.

넷째, 예산의 균형적 사용과 예산 편성의 과학화와 명분, 산출근거를 명확히 함으로써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장애인의 불균형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다섯째, 장애 관련 예산 편성에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여섯째, 장애 문제를 사회 주류화시키며 사회통합을 달성할 수 있다. 일곱째, 장애정책을 의료적 재활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전환시킬 수 있다.

현재 스웨덴, 남이프리카, 영국 등에서 장애 인지 예산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장애 인지 예산제 도입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자.

김황식 국무총리가 장애 인지 예산제도 도입에 대해 충분히 수긍하며 검토해 보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바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의 "장애인 정책의 재정확보를 위한 장애 인지 예산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도입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양성평등차원에서 성 인지 예산제도가 도입되는 것을 장애 인지 예산 차원에서 도입하자는 주장이신데, 충분히 수긍가는 의견"이라며 "기대효과 등에 대해 검토하고 효용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지난 8월 1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 인지 예산 제도화를 위한 ‘전국 장애 인지 예산제도화 추진연대’가 출범식을 가졌다. 연대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를 포함해 총 7개의 단체로 구성됐으며, 전국 단위의 연대를 구성하고 국가재정법 및 지방재정법의 개정과 장애영향평가 및 장애 구분 통계를 시행하고 일반정책에 장애주류화 전략을 도입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서울시에서는 장애인 희망서울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장애 인지 예산을 도입하겠다고 하였으나 아직 뚜렷한 이행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는 전국을 돌며 장애 인지 예산제 도입을 위한 세미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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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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