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은 텔레비전에서 강력 범죄가 발생할 때면 빠지지 않고 출연하여 범죄심리나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곤 한다.

그는 86년에 경찰에 입문하여 경찰대학교 교수로 활약하다가 최근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를 설립하였고, 국내에는 흔하지 않은 전문 프로파일러로 진범을 추정하는 수사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각종 강연을 통해 사회정의와 범죄예방 등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며 세상과 깊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KBS ‘강연 100도씨’에 출연하여 ‘작은 배려’라는 제목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표창원은 주로 강력 범죄자를 쫒고 분석하는 입장이므로 강자의 입장이라 할 수 있는데,약자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궁금할 것이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8명이 탄 버스가 도로를 달리다가 절벽에 반쯤 걸리게 되었다고 가정하고, 1명이 뛰어내려야 모두가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희생자를 지목할 권리를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모두를 위해 희생시킬 누구를 지목할 것인가에 대하여 KBS는 거리로 나가 설문조사를 하였다.

시민 671명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나이 어린 학생이 1위, 노인대학생이 2위, 노동자가 3위, 다운증후군 환자가 4위로 나타났다.

프렌시스 페이트 배가 180년 전 11월 25일 캐나다를 출발하여 뉴 폴랜드를 지나다가 풍란을 만나 난파를 당하게 되었다. 통나무를 가득 실은 화물선이었는데, 28명의 선원이 생존하게 되었다.

그들은 빗물을 받아먹으며 구조대를 기다리다가 13일이 지나 굶어죽게 되자 선장이 우리가 모두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대책을 찾자고 제안하여 나온 대안이 우리 중에 한 명을 선정해서 그 사람의 희생으로 우리가 살아남자고 제안되었다. 그 사람의 고기를 먹고 구조선을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반대도 많았으나 갑판장, 요리사 등이 한 목소리로 유일한 대안이라고 지속적으로 설득하였다. 안타깝지만 제비뽑기로 공평하게 선정하자고 하여 결국 격론 끝에 만장일치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다.

선장이 준비한 막대기로 한 사람을 선정하는 방식을 택하였는데, 각자에게 막대를 하나씩 나누어 주는데, 그 중 막대 하나가 끝이 잘린 것이어서 이를 받게 되면 지목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희생된 사람은 가장 나이가 어린 수습 선원이었다. 그 선원은 기꺼이 ‘제 고기를 먹고 살아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3일 후 구조선이 왔고, 인육을 먹은 사실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극한상황이지만 그 행위가 처벌받을 살인인가를 재판하여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선원 중 한 명이 친구에게 술을 마시며 토로하기를, 결국 공평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미 나이 많은 간부급 선원들이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누가 뽑힐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을 우리는 견딜 수가 없다. 가장 약한 사람, 가장 어린 사람을 선정하도록 하자‘고 사전 모의를 했다. 그래서 제비뽑기를 내밀 때 이미 끝이 잘린 막대기는 15세 소년이 뽑도록 되어 있었다.

약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약자에 대해 괴롭힘을 마구 행사해도 될까?

첫째, 감정이 상당부분 작용한다. 분노, 그 뿌리는 약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과거 자신이 어린시절 약자였을 때 당한 것을 엉뚱한 다른 약자에게 쏟아낸 것이다.

둘째 두려움이다. 이것은 조금 복잡한 심리인데, 투사라고 심리학에서는 말한다. 자신이 약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롭힘을 당할까봐 심리적으로 강자로 위장하기 위해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셋째 학습효과이다. 시어머니에게서 구박받은 새댁이 시어머니가 되면 보고 배운 대로 며느리에게 그대로 한다. 군대, 직장 등에서 이러한 현상은 흔히 발견된다.

또 하나는 이익이다. 부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애환을 해결해주면 언젠가는 기어오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껏 통제하기 위하여 고의로 약자를 괴롭힌다. 식민지 사회에서 더욱 악랄하게 피지배층을 괴롭히는 것이 이러한 경우일 것이다.

본인의 감정이나 이익이 아닌 상황 때문에 약자를 괴롭히는 경우도 발견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 히틀러의 심복, 600만 명에 달하는 유태인, 유색인종, 동성애자, 정신질환자(장애인 30만이 독가스실에서 희생되었다), 즉 우생학적으로 열등인자, 건강한 아리안 백인 혈통을 제외한 약자를 집단학살한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1961년 그는 잡혀서 재판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잔혹한 사람이기에, 어떤 괴물이기에, 얼마나 다른 특이한 사람이기에 그런 만행을 자행했을까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어서 놀라게 했고, 전혀 반성하지 않아서 또 놀라게 하였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임무를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했을 뿐이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이 사건을 보고 수용소에 있었던 피해자 한나 이렌트는 후에 ‘악의 평범함’이라는 책을 쓴다. 인간의 잔혹함, 고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러한지 심리학자 밀 그램은 실험을 하였다. 피실험자에게 교사역할을 하도록 하고, 학생에게 질문을 하게 한 후 틀리면 버튼을 눌러 벌을 주는 실험이었다.

버튼을 누르게 되면 학생의 몸에 연결된 전기선에 전압이 올라간다. 학생이 답을 틀리면 25볼트의 전기를 흐르게 하는 것이었다. 계속 틀리면 전압은 점점 높아진다. 258볼트가 되면 위험해지고, 450볼트가 되면 치명적이 된다.

실험자 26명 중 258볼트에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이 ‘이것 위험한 것 아니냐,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물으면 권위를 가진 실험 주도자가 ‘당신 역할은 버튼 누르는 것이다, 임무수행에 충실하면 된다. 얼마나 힘들지는 신경을 쓰지 말라’고 지도하였다.

이런 약자가 고통 받고 희생당하는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최근 오히려 범죄가 많아지고 있다.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배려 받지 못하면 범죄가 늘어난다. 약자로서 피해를 당하고, 핍박받았던 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강력 범죄자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약자였을 때 관심과 보호, 배려를 받지 못하고 냉대, 멸시, 방임의 경험을 갖게 되었던 사실이 있다. 연쇄살인, 연쇄성범죄, 묻지마범죄자, 존속살임범 등은 양육받아야 하고 애정을 받아야 하는 시절에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성장하여 힘을 가지면서 사회적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나름 정당화하며 살해하고 불을 질러왔다. 약자가 배려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기가 쉬워진다.

그러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누가 약자인가이다.

‘나는 강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자 처음에는 방청객 중 아무도 없었다. 약자만 골라서 방청객을 초대했느냐고 농을 하자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2명이 손을 들었다. ‘나는 약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자 8명이 손을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때는 약자, 어떤 때는 강자가 된다. 상대적인 것이다. 버스에 자리가 하나 남아 있고 장애인이 옆에 있다면 여러분은 강자인가, 약자인가?

하지만 통상적으로 늘 강자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다. 지배계층, 지도층이 그렇다. 그들은 극히 소수이다. 이주민, 장애인, 성적 소수자는 언제나 약자다. 그러나 대부분은 강자와 약자 두 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왜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야생에서는 약육강식이다. 약자는 도태된다. 동물 사회에서 약자는 배제된다. 동물들은 태어나 3시간만 지나면 걷는다. 살아남기 위해 강자가 되어야만 한다.

사람은 1년이 되어도 걷지 못한다. 인류는 약자를 배려해야 살 수 있다. 뇌가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부족하다면 그 사회는 경제적 성장과 무관하게 인간적으로는 발전하지 못한 사회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언제든지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자녀가 언제든지 약자가 될 수 있다.

지배계층으로 올라가고자 하고, 입시경쟁에서 이기려는 강자 지향이 행복할까? 나 혼자 강하다고 해서 우리는 행복할까? '나눠 주려고 했더니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럼 나 혼자 먹어야지’ 하면 될까?

우리는 약자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아내려 한다. 인간의 뇌에는 섬엽이라는 부위가 있는데, 이 기능은 비양심적 행위를 하면 견디지 못하게, 기분 나쁘게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는 첫째, 사회적으로 법과 제도, 문화, 관행 등이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유가 아직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약자를 위한 사회 구조와 모습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둘째, 사회 변혁은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개인적으로 나만의 작은 배려를 위한 희생과 실천을 해야 한다. 대단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작은 말 한 마디, 배려가 없으면 힘들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나만의 배려를 실천하자. 큰 피해 입지 않는 한도 내에서 눈초리와 말과 관심과 배려를 이웃에게 돌리자.

약자를 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시각, 예방 차원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기성장과 자부심을 강조하지 않고 심리적으로 분석하고 왜 배려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은 것은 표창원이 범죄 전문가이기 때문이겠다.

이유나 효과를 달아서 배려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 인권이라는 실천의 의무보다 먼저 설명된 듯한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약자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그의 논리가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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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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