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회의 장면. 좌측 대형 유리 안에서 각국의 동시통역이 진행되고, 전면의 대형스크린을 통해 자막서비스와 영어와 자국의 수화서비스가 동시에 진행된다. ⓒ이찬우

오래 전 인류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만하게 되고 힘을 과시하고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천국까지 닿을 수 있는 높은 탑을 세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오만함에 분노하며 하나님은 인간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여 인간들을 분열 시켜 탑을 무너뜨렸다는 성경에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언어가 달라진 인간은 소통의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나마 한국은 하나의 언어가 큰 장점이 된다.

얼마 전에 다녀온 네팔은 한 나라에 언어가 수십 가지여서 정부가 정책을 전달하거나 소통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이 근대사에 많은 어려운 일을 겪었어도 빠른 시일 안에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은 것도 단일 언어의 사용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야기를 본론으로 들어가서 서로의 언어가 다른 국제사회에서는 어떻게 소통을 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최근 다녀온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한국정부보고서 심의과정에서 본 소통의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위원들과 각 나라에서 참가한 사람 들 특히 의사소통에서 불리한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회의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고 소통하고 결과를 통보하는 과정들이 실로 드라마틱하다. 현장에서 통역과 수화, 자막서비스가 전달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인터넷으로 실시간 화면과 문자자막서비스로 생중계가 된다는 것은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먼저 언어의 소통은 회의실 측면의 전면에 걸쳐 설치되어 있는 동시 통역실에서 영어, 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아랍어, 독일어, 일어, 폴란드어, 이태리어, 한국어 등으로 전문통역사들이 실시간 통역을 진행하고 있었다.

수화는 국제수화와 자국의 수화로 동시에 각각의 수화통역사 두 명이 의장석 옆의 공간에서 수고를 한다. 한국이 발표를 할 때에는 한국어로 통역이 되는 리시버를 착용한 한국수화통역사가 수화통역을 하고, 그 옆에 국제통역을 하는 분이 영어로 통역이 되는 리시버를 착용하고 열심히 통역을 한다.

수화통역은 보통 두 분이 번갈아 가면서 하는데 감히 예술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마치 지휘자와 같이 열정적으로 수화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용언어인 영어수화와 발표하는 나라의 자국언어 수화를 위해 동시에 수화통역사가 수고를 하고 있다. ⓒ이찬우

의장석 뒤편에 있는 대형스크린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실시간 자막서비스는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데 회의장의 분위기와 목소리를 듣고 유엔본부의 전문 속기사들이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시청각장애인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 경우에도 장애인과 통역사의 손을 통하여 의사를 전달하고 통역사는 그 의사를 말로 전달하는 과정을 본적도 있다.

일전에는 일본의 청각장애인이 수화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일본어로 통역을 하고 그것을 다시 영어로 재통역을 하는 장면도 본 적이 있다.

이렇듯 여러 언어와 수단을 사용하는 국제사회의 소통은 한가지의 언어와 수화통역으로 진행되는 한국 내에서의 소통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되어 답답할지 모르지만 진지하게 진행되는 회의장의 분위기는 많은 것을 시사하게 한다.

회의장에서는 말이 어눌하거나 수화로 전달되는 시간이 지체되어도 누구하나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기다려주고 경청하려고 애를 쓰는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언어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웅변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없어도 모두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의 중요성과 준비하는 과정의 노고를 알기에 하나의 단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을 하게 된다. 이것이 소통의 기본이다.

소통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알려주고 받아들이고 배려하는 것이다. 소통의 기본은 경청이다.

최근 장애계에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알 권리와 알려 줄 의무라는 정보의 확장 면에서는 질적인 성장이 되었지만,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고 다른 사람이 발언할 기회도 주지 않는 이기적인 토론의 장은 아직도 소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인내의 방법을 배워야 하고, 상대방의 말에 완전히 몰입하고 집중해야 한다. 상대방이 말하려는 의도를 미리 생각하는 선입견을 버려야 하고. 섣불리 판단하고 결론짓지 않아야 한다.

국제회의의 소통과정이 우리 장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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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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