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장애학을 연구하는 연구모임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조한진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교수와 대학원생 중심의 '장애학연구회'이고, 다른 하나는 이석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모니터링센터 소장을 중심으로 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모임인 '장애학포럼'이다.

장애학연구회는 분기별로 공개모임을 갖고 세미나나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2014년의 제4회 세미나가 지난 6일 오후 3시 대구대학교 사회과학대 종합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발표자는 류미례 독립영화감독과 손홍일 대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되어 있었는데, 그동안에는 참석자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서울지역에서 세미나를 개최하다가 이번에 대구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였다.

류미례 감독은 이날 부득이한 관계로 참석을 하지 못하여 그의 남편인 유찬호 성공회 사제가 대신 발표를 하였는데, 단순히 남편이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공동 연구원이었기에 별 무리가 없었다.

유찬호 신부는 한국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서울시 지원으로 정신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정미소의 시설장으로 내정됐다.

영화 속 세상은 감독이 만들어 낸 인공적인 세상이라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 역시 시대적 감수성, 가치관, 문화, 관습과 태도, 고정관념 등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류미례 감독은 2000년부터 KBS 라디오에서 하는 프로그램인 ‘내일은 푸른하늘’에 출연하여 매주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소개하였는데, 그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영화들을 분류해 보면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첫째, 장애인들은 순수하여 세파에 찌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순수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영화이다. ‘제8요일’, ‘레인맨’, ‘우리 형’, ‘오! 브라더스’, ‘아이 엠 셈’, ‘맨발의 기붕이’, ‘웰컴 투 동막골’ 등의 영화가 이에 속한다.

이러한 영화에서는 대부분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두 주인공을 내세워 비장애인의 불행이 수용되는 형식이거나 장애인의 순수한 웃음을 트릭으로 사용한다.

둘째, 장애인을 특별한 능력이 있는 천재나 해결사로 다룬다. ‘시네마 천국’, ‘집으로 가는 길’,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디 아이‘, '미믹’, 큐브‘, ’머큐리‘, 루나 파파’, ‘킹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셋째,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는 두뇌싸움을 위해 함정으로 장애인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도니 다코’, ‘유주얼 서스펙트’, ‘스코어’, ‘천사의 침묵’ 등에서 사람들은 장애인을 용의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을 이용하여 반전을 꾀하는 것이다.

넷째, 주인공의 캐릭터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 장애인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고양이를 부탁해’, ‘햇빛 쏟아지던 날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피아니스트’, ‘슬링 블레이드’,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이 그 예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태희와 지영이 길을 가다가 정신장애인 주상을 만나게 되는데, 태희는 자유를 느끼지만 지영은 두려움을 느낀다. 태희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의 보호본능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장치로서 장애인을 등장시켰다고 한다. ‘햇빛 쏟아지는 날들’에서도 불량소년처럼 보이는 이들이지만 장애인을 보호하는 정의가 있음을 보여준다.

다섯쩨, 대립관계를 무마시키거나 분위기 메이커로서 장애인을 등장시키기도 하는데, ‘웰컴 투 동막골’, ‘환상의 커플’, ‘웃어라 동해야’ 등이 이에 속한다.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삼지는 않지만,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을 주는 역할로 사용된다.

여섯째, 스릴러 영화의 피해자로 장애인을 등장시키는 영화인데, ‘빌리지’, ‘무언의 목격자’, ‘브링크’, ‘어두워질 때까지’, ‘시크릿 윈도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마약 운반책 범인들이 공항에서 가방이 바뀌자 시각장애인의 집을 침범하게 되는데, 시각장애인이 침입자와 싸우기 위해 빛을 내는 등을 모두 부수어버린다거나 하는 지혜가 ‘어두워질 때까지’에 나타난다.

일곱째, 장애를 콤플렉스로 여기고 기피하는 심리를 표현하는 영화이다. ‘후아유’, ‘...ing’, ‘레아’ 등이 이에 속한다. ‘후아유’에서는 청각장애인 인주가 수족관 다이버로 장애를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 더욱 열심히 일하다 결국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연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장애는 숨기고 싶은 상처를 상징한다.

여덟째, 사랑의 장애물로서 장애를 등장시키는 영화이다. ‘러브 어페어’, ‘불새’ 등에서와 같이 사랑을 이루려는 순간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되고 그로 인해 헤어진다는 좀 흔한 이야기이다.

아홉째, 형벌로서의 정신장애나 기억상실을 사용한다. ‘천국의 계단’, ‘이브의 모든 것’, ‘왔다 장보리’ 등이 이에 속하는 영화나 드라마다.

사람들은 자기방어기제로 인하여 기억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으나 악역을 한 사람이 형벌로 장애를 입게 되는 것은 장애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선입견을 줄 위험성이 있다.

열째, 장애를 극복한 신화의 주인공으로 장애인을 사용한다. ‘나의 왼발’, ‘뷰티풀 마인드’, ‘프리다’, ‘폴락’, ‘샤인’, ‘기적의 가비’, '레이' 등이 이에 속한다.

이렇게 영화를 분류한 다음 류미례 감독은 2014년 한국영화에서 장애인을 등장시킨 영화 ‘명량’, ‘군도’, ‘표적’에 대해 언급하였다.

‘명량’은 이야기 전개를 위해 장애를 기능적으로 활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첩보원 임준영의 부인 정씨가 청각장애인. 뛰어난 책략가 구루지마는 조선인 포로들로 구성된 배에 많은 양의 화약을 실어서 이순신 장군이 타고 있는 장군선에 충돌하도록 계략을 꾸민다. 마침 그 배에 첩보원 임준영이 타게 된다. 전투 중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깃발로 신호를 취하는데 임준영은 어떤 식으로든 그 상황을 알리고 싶어한다. 바로 그 상황이 청각장애인이 필요한 이유이다. 임준영은 화약선에서 죽어가면서 멀리 보이는 아내 정씨에게 큰 소리로 뭔가를 외친다.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소리가 안들리면 소통이 안 되겠지만 정 씨 여인은 멀리서나마 남편이 필사적으로 뭔가를 외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래서 자기 치마를 벗어 흔드는 방법으로 조선의 해군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애를 쓴다. ‘명량’의 장애인은 편견이나 왜곡 없이 장애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군도’는 장애에 대한 감성적 태도를 활용한 것으로 류미례 감독은 보았다. 평범한 인간 도치가 틱장애를 가지고 있어 틱장애는 지능이 떨어진다는 느낌과 함께 주인공의 매력을 약화시켜서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장애가 사용된 것이다.

‘표적’은 장애를 올바르게 인식시키기 위해 장애를 활용한 예로 보았다. 롤러코스터 같은 스릴러 영화 ‘표적’은 발견의 기쁨을 주는 영화이다. 시작하자마자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쫓기던 남자 여훈은 교통사고로 긴급 후송된다. 동생 성훈은 여훈을 구하기 위해 담당의사 태준의 아내 희주를 납치하게 되는데 뚜렛장애가 있는 성훈과 정신의학과 전문의 희주의 조합이 장애코드로 영화를 읽어내는 작업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백성훈은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희주는 “괜찮아요. 당신한테는 재채기 같은 거잖아요. 참지 못한다는 것 알아요”라고 대답한다. 뚜렛장애 홍기호라고 명함까지 만들어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던 홍기호 씨가 결국 목숨을 끊은 사례를 기억하게 한다.

류미례 감독은 발표문에서 수 년간 진행해 온 미디어 읽기교육을 소개하였다. 장애코드로 미디어 읽기 교육은 모니터링 교육과는 다르다고 류미례 감독은 말한다.

‘온에어’ 18회에서 감독은 오승아에게 옷을 벗어라고 한다. 역할을 맡은 은형이는 7살 수준의 지적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오승아는 나이가 28살인데 몸에 맞게 입는 것이 맞다고 한다. 감독은 7살이 아무리 어른 흉내를 내도 그런 옷은 아니라고 한다. 이에 대해 각자 작가가 되어 발표를 해 본다면 여러 해석의 재미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류미례 감독은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술회하였다. 다음은 류미례 감독의 미디어 교육에 대한 술회 내용이다.

장애인 미디어 교육은 ‘비판적 미디어읽기와 참여적 제작’을 목표로 2003년부터 진행되었다. 이러한 미디어 교육에서의 미디어 읽기는 모니터링 교육과 영화이야기 마당의 중간 단계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장애유형의 미디어교육에 비해 지적장애인 미디어 교육에서의 미디어 읽기는 교육 참여자의 상황에 맞춰 섬세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지적 장애인이 참여하는 미디어 교육에서는 미디어 교사들 사이에서도 미디어 읽기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존재한다. ‘지적장애인은 미디어 읽기가 불가능하다’는 불가능론과, ‘지적장애인에게 미디어 읽기는 필요없다’는 불필요론이 있다.

불가능론 입장에서는 그 근거로 “나무를 나무라고 말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이 어떻게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입장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장애인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라는 진리이다. 또한 문화생산자와 수용자의 관계를 따져볼 때 ‘오독 또한 수용자의 권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미디어 읽기는 ‘내용을 준비해 간 교사-정답을 읽어야하는 참여자’의 관계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오감과 정서와 잠재의식까지가 총동원되는 전면적인 충돌의 과정이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들을 비춰보고 나눌 수 있는 거울의 역할로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역동적인 의미를 지닌 미디어 읽기에 대해서 편협하게 해석하여 ‘미디어 읽기는 불가능하다’고 단정을 내리는 것은 지나친 속단이다.

‘지적장애인에게 미디어 읽기는 필요없다’는 불필요론의 근거로는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참여자에게 구태여 ‘너는 장애인이다’라고 강조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2005년에 진행했던 지적장애인 미디어 교육에서는 참여자들의 보호자 역할을 했던 특수교사가 “생애주기적으로 예민한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여고생들에게는 스스로를 지적장애임을 강조하는 행위는 상처가 될 수 있다”라는 지적을 했다.

그래서 다음 해에는 학생들이 가장 좋아했던 드라마 ‘궁’과 관련한 미디어 읽기를 진행했다. 지적 장애 청소년의 정체성을 장애로만 한정시키지 않아야하는 것처럼 장애 정체성 자체를 제외해서도 안 된다.

미디어 읽기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미디어 읽기가 불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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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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