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 그룹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제주 철인 안병식 씨는 우리 모두에게 자부심을 주었다. ⓒkbs 방송 화면 캡처

두 번째 체크 포인트를 출발할 때 물을 가득 채운 물 백처럼 내 마음이 충만했다. 김성관 씨의 말씀처럼 내게는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함께 레이스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가장 소중한 목표가 오직 내게만 있다.

“어, 저 친구들이 벌써 따라왔네.”

창용찬 씨가 우리보다 두 시간 늦게 출발한 선두 그룹 주자들이 달려오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선두 주자는 타이완에서 온 케빈이라고 했다.

케빈은 직업이 교사인데도 마라톤 풀코스 기록이 2시간 20분대에 이를 정도로 선수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2002년 모로코 사하라 레이스에서는 9위를 한 사막 레이스의 베테랑이었다. 케빈의 뒤를 캐나다의 레이가 따르고 있고 세 번째는 미국의 조셉이라고 했다. 잠시 후, 일행이 환호를 했다.

“병식이 파이팅.”

김성관 씨의 목소리가 예순을 넘긴 분답지 않게 우렁찼다. 이어서 창용찬 씨와 정혜경 씨의 성원을 보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주 철인이라 불리는 안병식 씨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었다.

“경태형 파이팅. 다른 분들도 모두 파이팅.”

안병식 씨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소리쳤다.

“병식아, 다 제치고 우승, 우승해야 해.”

나는 뱃속에서 우러나온 목소리로 성원을 보냈다. 내 마음의 소리였다.

안병식 씨는 첫날부터 여러 나라에서 온 베테랑 레이서들과 선두 그룹에서 레이스를 했다. 그러한 안병식 씨의 모습이 우리들 모두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야, 저 친구들 정말 철인들이야. 벌써 가물가물하게 멀어졌어.”

창용찬 씨가 앞서 간 선두 그룹을 보며 감탄을 했다.

“형님도 근육질의 슈퍼맨이잖아요.”

“송 관장이 내 몸을 봤어?”

“왜 못 봐요. 사하라에 해 뜨는 것도 볼 수 있는데.”

“그렇담 할 말 없군.”

낮은 모래 구릉이 이어지고 있었다. 신발 등이 묻힐 정도여서 달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 도착하기 전의 상황에 비하면 안락한 주로였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긴 하지만 견딜만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정혜경 씨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양이다. 완만한 모래 구릉들이 겹쳐지고 있는 사막 풍경이 매우 아름다우리라 생각했다. 모래구릉 지대가 끝나고 모래와 자잘한 돌이 깔린 평원이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평원이 길게 이어졌다. 레이스의 속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었다.

내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정상적인 속도였다. 발바닥 통증과 뜨거운 햇살과 고갈되고 있는 체력을 감안했을 때 낼 수 있는 속도였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세 번째 체크 포인트까지 7.4㎞의 구간이 짧게 느껴졌다. 주로의 평탄함 때문인 것 같았다. 체크 포인트에서 발바닥 치료를 받았다.

“미스터 송, 레이스를 계속할 수 있겠소?”

내 발 상태를 본 의사가 물었다.

“괜찮아요. 얼마든지 달릴 수 있어요.”

아마도 의사는 내 발 상태보다는 앞을 못 본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았다.<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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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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