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 포기하기도 어려운 현실, 많은 사람들 중심에서 새로운 소외감을 느꼈다. ⓒkbs 방송 화면 캡쳐

만약 내가 레이스를 포기하면 그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겠지. 그리고 장애인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하는 말들이 꼬리표처럼 따르겠지.

다른 사람들이 포기를 했을 때는 포기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만 받아들일 뿐 애써 꼬리표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에서 새로운 소외감을 느꼈다. 언젠가 써 두었던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를 떠 올렸다.

첫날은

제일 먼저

사랑하는 아내 얼굴을 보고 싶다

앞 못 보는 남편 만나

속이 다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묵묵히 가정을 지켜준

천사의 얼굴을 보고 싶다

다음은

부모님 얼굴을 보고 싶다

두 눈 잃은

아들 부여잡고

통한의 아픔 참으며

한 서린 삶을 살아오신

얼굴을 보고 싶다

다음은

두 아들 녀석

얼굴을 보고 싶다

야구놀이 같이 안 해줘도

친구들 앞에서 기 죽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

두 아들 얼굴을 보고 싶다

둘째 날은

집 주변

풍경을 보고 싶다

아파트촌 숲길 거닐며

옆집 아저씨도 만나서

골프며 고스톱도 치고 싶다

다음은

운전을 하고 싶다

전국 방방곡곡 다니며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인터넷 게임을 하고 싶다

화려한 화면을 보면서

열광적으로

신나는 게임을

하고 싶다

삼일째 되는 날은

영화를 보고 싶다

심야에 디 워도 보고

해리포터도 보면서

아름다운 화면을

기억하고 싶다

그다음은

여행을 하고 싶다

나 홀로

자전거라도 타고

낯선 곳으로 가서

사색에

잠기고 싶다

그리고

책을 읽은 후

실컷 울겠다

읽고 싶었던 책

탐독하고 나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에

실컷 울겠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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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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