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을 걷고 있는 송경태씨. ⓒkbs 방송 화면 캡쳐

창용찬 씨는 1988년도 미스터 코리아 출신으로 근육질의 신체에 에너지가 넘쳤다.

김성관 씨는 굴지의 건설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한 김성관 씨는 회사를 운영하는 능력만큼이나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능력도 뛰어난 분이었다. 죽는 날까지 남에게 부축받지 않고 살기 위해 마라톤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어젯밤, 캠프에서 롱데이에 대비해서 나를 위해 새로운 준비를 했다. 첫날부터 나의 레이스 파트너로 고생을 한 김인백 씨 대신 창용찬 씨가 레이스 파트너를 맡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김성관 씨와 정혜경 씨가 보조를 맞추어 함께 뛰기로 했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완주시키기 위한 고마운 배려였다.

내 몸, 특히 발이 사하라에 조금씩 적응을 했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적응이었다. 발바닥의 통증이 무디어지면서 달리는 속도에 적응을 했다.

정혜경 씨가 내 곁에서 달리며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었다. 여성의 몸으로 이 가혹한 레이스를 하고 있는 정혜경 씨 역시 나 못지않게 발바닥의 통증을 겪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힘이 되었다.

2㎞쯤 달리고 나니 모래가 단단하게 굳어진 지역이 시작되었다. 창용찬 씨의 레이스 속도가 더 빨라졌다.

“송 관장, 힘들면 말해.”

창용찬 씨가 나를 배려해주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괜찮아야지. 지금부터 힘이 빠지면 롱데이가 물 건너가잖아?”

창용찬 씨가 농담처럼 하는 말 속에는 내 등을 떠미는 격려가 담겨 있었다.

“롱데이를 달려가야지 물 건너가면 안 되잖아요.”

나도 농담처럼 대답하며 각오를 다졌다.

“물 건너 갈 배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혜경 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인백 씨와 둘이서만 달릴 때보다는 우선 분위기가 달랐다. 여러 사람이 나와 함께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고무시켰다. 그리고 여성에게서 흔히 느끼기 쉬운 연약함과는 달리 인내의 한계점을 넘어서 레이스를 하고 있는 정혜경 씨가 내게 정신적인 힘이 되었다.

“경선이는 이번 생일을 잊지 못할 거예요.”

어제 캠프에서 생일 파티를 했던 배경선 씨를 두고 한 말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레이서들이 주최 측에서 마련해준 케이크를 한 조각씩 나누어 먹으며 경선 씨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레이스의 피로를 잠시 잊은 채 왁자한 분위기에서 우정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경선 씨가 케이크 조각을 내 입에 넣어주며 내일 롱데이의 건투를 빌어 주었다.

“경선 씨가 끝까지 레이스를 했더라면 더욱 특별한 생일이 되었을 텐데….”

창용찬 씨가 경선 씨의 레이스 포기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만 송 관장님이 이렇게 끝까지 달리고 있잖아요.”

나는 정혜경 씨의 말에 고마움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혜경 씨 말 들었지? 송 관장은 우리 팀이 다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달려야 해.”

실명을 한 이후 내가 어떤 중심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신체의 장애에서 느껴야만 했던 소외감이 항상 나를 중심에서 멀어지게 했다.

지금 난 비록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중심에 있다. 그것도 23개 국에서 온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아지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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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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