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 산맥 스쿼미시 치프봉 수직 거벽을 오를 때였다. 240m가 남은 지점에서 110도의 마이너스 턱을 오르기 위해 사력을 다할 때였다.

몸이 조금이라도 가벼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자 살이라도 잘라서 떼어내 버리고 싶었다. 로프에 매달린 몸이 한 바퀴 회전을 했다.

그때 조끼 주머니에서 미세한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조끼 주머니에 1센트짜리 캐나다 동전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이 동전 세 개 무게라도 덜면 내 몸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떨어뜨려 버렸다. 아, 그 동전 세 개가 내 몸에서 떨어지자 3㎏이라도 줄어든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믿기지 않는 일이겠지만 극한 상황을 체험하지 않고는 그 신비, 아니 그 진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오늘은 낮과 밤을 달려야 한다. 주파해야 할 거리는 80㎞. 오늘의 레이스를 롱데이(long day)라고 했다. 어제까지 달린 거리는 160㎞.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득한 거리다. 그 아득한 거리의 절반을 오늘 달려야 한다. 대부분의 레이서들은 오늘 롱데이에 대비해 컨디션을 조절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내게는 컨디션을 조절할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첫날부터 정신과 육체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달려 왔기에.

롱데이의 출발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주파해야 할 거리가 길어서인지 선두와 후미 그룹의 기록 차이를 고려해서 두 그룹의 출발 시간을 달리했다.

선두그룹의 남자 레이서 40명과 여자 레이서 5명을 나머지 레이서들보다 2시간 뒤에 출발시켰다. 그러나 선두 그룹은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추월을 할 것이다.

출발 전, 메리 아담스의 코스 브리핑은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갖게 했다. 모래 구릉이 코스의 40퍼센트가 되었고 야간에 넘어가야 하는 구간이 상당 부분 있다고 했다.

야간에 넘어가는 건 조금도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내겐 낮과 밤의 구분이 없으니까. 그러나 체력을 빨아 먹는 흡혈귀 같은 모래구릉을 생각만 해도 기운이 빠졌다.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은 코스 중간쯤에 원주민들이 사는 오아시스가 있다는 점이다.

셋째 날 오아시스에서 영국 여성 마리아가 내 몸의 나바론 요새 대포를 즐겁게 감상했던 그런 해프닝이야 없겠지만 대추야자 나무에서 내뿜는 신선한 산소와 샘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물을 상상만 해도 기대가 된다.

출발 지점에서 선두 그룹 레이서들이 나와서 하이파이브를 해주며 성원을 해주었다. 레이스 도중 처음으로 모든 레이서들이 한자리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선두 그룹 레이서들이 내게 깊은 관심과 함께 뜨겁게 성원을 해주었다.

출발 전부터 불고 있던 모래 바람이 출발 때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세차게 불었다. 출발을 했다. 나는 첫걸음을 내디디면서 소걸음이 천리 간다는 우보천리(牛步千里)라는 글귀를 떠올렸다.

나는 첫날 출발해서부터 지금까지 소처럼 걸음을 내디뎠다. 소의 그 우직함과 끈기를 내 정신 속에 심어두면서.

그러나 정신은 그렇다 쳐도 체력은 소를 닮을 수가 없었다. 이 거친 사막을 달리는 내 몸은 연약하기 짝이 없었다.

출발의 첫 걸음을 내디디면서부터 어금니를 앙다물어야 했다.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뻗치는 통증 때문이었다. 이 발로 80㎞를 달릴 걸 생각하니 온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송 관장, 초반에 페이스를 빨리해서 해 뜨기 전에 최대한 멀리 가자.”

오늘부터 나의 레이스 파트너가 된 창용찬씨가 독려를 했다.

“그러죠, 형님.”

나는 대답을 하면서 생각했다. 롱데이 오늘이 내게 안겨 줄 고통에 대해서.

발바닥 통증, 목이 타는 갈증, 모래 폭풍의 공포, 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 분열되기 직전의 정신 상태로 사하라를 달려야 한다. 고통의 극점을 향해 달려야 한다.

창용찬씨가 주먹보다 작은 돌들이 깔린 지역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나는 스틱을 옆구리에 끼고 창용찬씨의 배낭을 잡고 레이스의 속도를 함께 했다.

바로 앞에서 김성관씨가 에스코트를 했다. 창용찬씨와 김성관씨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울트라 마라토너들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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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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