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의 신기루 때문에 레이스의 주로에서 이탈하려 하고 있는 걸까? 위기였다. ⓒkbs 방송 화면 캡쳐

혹성의 지표면 같은 황막한 황무지와 바위투성이 오르막을 넘어서 이제 다시 모래벌판을 달리고 있다. 오늘도 한낮의 지표 온도는 56℃를 상회하고 있다.

모래벌판으로 들어선 지 한 시간이 되어 가고 있다.

온몸의 수분이 메말라 버린 나무 둥치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발을 들 힘이 없다.

발을 질질 끌고 모래벌판을 가다 무너지듯 쓰러졌다.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보고 누웠다. 햇살이 얼굴에 따갑게 꽂혔다.

인백씨도 내 곁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인백씨가 내 얼굴에 물을 부어주었다. 뜨뜻미지근하던 물이 조금 지나자 신기하게도 시원해졌다.

바싹 마른 세포를 적셔 주어서일까! 혼미해졌던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인백씨, 고마워.”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도 신음을 뱉어 낼 정도로 힘이 들었다. 인백씨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리라.

“고맙긴요. 사실 관장님이 아니었으면 난 진작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인백씨 마음이 고마워서 또 힘을 내야겠네.”

세 번째 체크 포인트에 들어설 때는 마지막 남은 의지가 육체를 끌고 있었다. 텐트의 그늘 아래 들어서서 물을 흠뻑 마시고 나니 우선은 살 것 같았다.

사하라의 햇볕이 악마의 뜨거운 불길이라면 사하라의 그늘은 천사의 부드러운 손길 같았다. 햇볕과 그늘은 빛의 명암처럼 대비되는 극명한 차이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벗어놓은 배낭에 기대어 다리를 뻗고 눕자 이내 잠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잠이 들었다. 바싹 마른 몸을 물로 적시고 나자 온몸의 세포가 금세 달콤한 휴식 속으로 빠져들었다.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눈을 뜨는 데도 몸을 일으키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었다.

“출발하시오. 당신들이 도착한 지 10분이 되었소. 체크 포인트에서는 10분 이상 휴식할 수 없소.”

진행요원의 말이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 같았다. 배낭을 짊어졌다. 바위 덩어리를 짊어지는 것처럼 힘이 들었다. 배낭의 무게 위에 계량할 수 없는 피로의 무게가 더해지고 있었다.

발걸음을 떼기가 고통스러웠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고통을 참기보다 스스로 자초하는 고통을 참기가 더 힘이 들지도 모른다.

자초하고 있는 고통은 포기만 하면 끝날 수가 있기에. 이제 정신과 육체, 그 어느 쪽이 강자인지를 확인하는 걸음만 남아 있다.

군 입대 전 가을, 내장산을 갔던 때가 떠오른다. 생명의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던 단풍, 그 찬란한 빛의 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계곡의 맑은 물, 시원한 바람, 푸른 하늘, 수많은 행락객들, 지금 내가 그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 머릿속에 펼쳐지고 있는 그 아름다운 풍경들이 신기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백씨, 나 지금 신기루를 보았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신기루를.”

나를 바라보는 인백씨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고 있으리라. 앞을 볼 수 없는 내가 과연 신기루를 보았는지, 아니면 농담을 하고 있는지를 몰라서.

“오래 전 가을에 내장산엘 갔던 때가 떠오르며 그때의 풍경들이 현실처럼 펼쳐지고 있었거든. 그리고 내가 그 상황 속을 걷고 있었어.”

“잠시라도 좋았겠어요. 내 눈에 보이는 건 암갈색 대지와 따가운 햇살뿐인 걸요.”

인백씨가 보는 사하라는 암갈색 대지와 따가운 햇살일지라도 내가 상상하는 사하라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깊이와 그 대지를 비추는 빛의 찬란함이다. 내가 이 땅에서 흘린 땀의 대가로 순간이라도 좋으니 볼 수만 있었으면.

“관장님, 앞쪽에 상당히 높은 모래 산이 있어요. 지금까지 넘었던 모래 산과는 비교가 안되게 높아요.”(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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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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