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은 영원할지 몰라도 청춘은 영원할 수가 없지.”

모래구릉의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돌투성이 주로에서 겪었던 그 고통에 비하면 차라리 흡혈귀처럼 체력을 빨아먹는 모래구릉이 훨씬 나았다.

모래에 묻힌 발을 빼낼 때마다 주루룩 모래가 흘러내렸다. 적어도 발목이 빠지는 모래에서만큼은 앞이 안 보이는 불리함이 덜했다. 방향을 제대로 못 잡는 것 말고는 다른 모든 조건이 똑 같았다.

모래에서는 스틱도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장애물에 대한 불안도 전혀 없었기에 돌투성이 주로를 지나오면서 겪었던 고통이 모래구릉을 올라가는 데 힘이 되어 주었다.

“관장님, 체크 포인트에서 몰래 비약이라도 먹었어요? 왜 갑자기 컨디션이 좋아졌어요?”

“스태미너에 좋다는 전갈을 잡아먹었거든.”

나는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돌투성이 주로에서 직면했던 절망적인 상황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음의 차이가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두 개의 모래구릉을 넘고 나자 그나마 나아졌던 컨디션이 뜨거운 햇볕에 증발되고 말았다.

“인백씨, 구릉이 몇 개나 남은 것 같아?”

“두 개만 넘으면 될 것 같아요.”

“좀 쉬었다 갈까?”

“전갈 힘이 떨어졌나요? 그러죠.”

물을 마셨다. 체내에서 물을 흡수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햇볕에 달구어졌던 몸이 식고 있었다.

배낭에서 육포를 꺼내어 잘게 찢어서 씹었다. 육포가 바싹 말라서 단단하기도 했지만 이빨이 아파서 도저히 씹을 수가 없었다. 이빨이 죄다 잇몸에서 솟은 탓이었다. 극심한 피로 때문이었다.

남아 있는 첫 번째 모래구릉을 막 넘어갔을 때 무서운 속도로 모래폭풍이 몰려왔다. 대지가 음산한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나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서 버프로 얼굴을 감싼 채 모래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지금의 상황을 그려보았다.

사막은 먹구름이 낮게 깔린 바다 같았다. 자욱한 모래와 용광로에서 갓 빠져나온 듯한 열기를 동반한 바람이 태양을 가리고 황금 빛 모래구릉을 마구 할퀴었다.

땅위의 모래입자들이 모두 살아서 하늘로 비상을 서둘렀고 맹위를 떨치던 태양은 모래입자들에 가려져 구름 속의 달처럼 빛을 잃었다.

낮도 밤도 아닌 제3의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땅속 저 깊은 데서 울려오는 듯한 음산한 울림과 막강한 힘을 지닌 바람소리가 버프로 감싼 귓속을 울렸다.

앞 다투어 비상해 난무하는 모래입자들이 허공을 메우고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모래입자들은 미세한 침을 지닌 벌레들처럼 옷깃을 붙잡고 있는 손등을 공격했다. 손등에 무수한 바늘이 찔러대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모래폭풍의 기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깊은 울림과 함께 불어대는 모래폭풍은 지상의 물체들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일정한 방향도 없이 휘몰아치는 기류를 따라 집요하면서도 잔인하게 공격을 계속했다.

입안에서 모래가 서걱거렸다. 옷깃 사이는 물론 단추를 채운 윗옷 앞섶 사이로 침투해 들어온 모래가 땀과 엉켜 살갗을 아프게 갉아 대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질식할 것만 같은 호흡장애였다. 대기 속에서 산소가 갑자기 없어져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열기와 모래 입자들만 호흡기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눈, 코, 입 어디 할 것 없이 모래 입자들이 집요하게 공격해 들어왔다. 땀구멍 속까지 기승을 부리며 파고들었다.

입안은 메마르다 못해 굴뚝 속 같았다. 혀에서 분비되는 침마저도 고갈되어 혀가 나무조각처럼 굳어졌다.

인간이란 존재가 신비할 정도로 강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독하면서도 무자비한 모래폭풍을 견뎌내고 두 시간이 넘게 이 거친 땅을 쉬다 걷다 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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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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