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 왔소?”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서걱거림처럼 들렸다.
“코리아. 레이스를 할 수 있겠어요?”
“우선 물을 좀 주시오.”
조금 전, 인백씨가 물을 주겠다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존이오.”
물을 마시고 난 남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서걱거렸다. 배낭에서 알루미늄 시트를 꺼내 존 위에 펼쳐 인공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레이스를 계속할 수 있겠소?”
인백씨가 재차 묻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관장님, 이 사람이 관장님을 쳐다보고 있어요. 관장님이 누구라는 걸 아나 봐요.”
“오, 당신이 시각장애인 미스터 송 맞아요?”
“그런데요.”
“미스터 송, 당신은 위대한 레이서요. 당신과 함께 이 레이스를 끝내고 싶지만 보다시피 난 더 이상 레이스를 할 수 없는 상태요. 남은 구간 성공을 비오.”
존의 서걱거리는 목소리가 비장하게 들렸다.
“구조요청 신호를 보낼게요.”
인백씨가 호루라기를 꺼내어 길게 몇 차례 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도 굉장한 사막이 있어요. 사하라에 오려고 그 사막에서 석 달 동안 훈련을 했어요. 사하라는 그 사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땅이오. 위대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악마의 땅이라고 해야 할지. 미스터 송,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이 악마의 땅에서 레이스를 하고 있는 당신은 정말 위대한 레이서요.”
“헌신적인 레이스 파트너가 나를 잘 이끌어 준 덕택이오.”
“좋은 파트너를 만난다는 건 행복이오.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두 사람 모두 끝까지 완주하리라 믿소. 행운을 비오.”
운영요원이 타고 온 지프에 실려서 떠나기 전에 존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존의 진심이 손을 통해 전해졌다. 지프가 출발할 때 존이 해준 ‘good lucky’라는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체크 포인트를 출발할 때 오늘도 20㎞를 달렸다는 만족감이 내 마음의 한 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이 만족감이 희열로 승화되어 내 마음을 가득 채울 순간을 상상해보았다.
그 순간까지는 아직도 150㎞가 남아 있었다. 대륙을 횡단하는 것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120㎞를 달려왔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남아 있는 거리를 좁혀 갈 것이다. 삶이란 예측할 수 없는 역경과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불행마저도 극복하면서 시간의 길을 가는 것이다. 지금 이 고난의 레이스마저도 내 삶의 여정이 분명할진대 중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체크 포인트를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모래구릉 지대가 시작되었다. 체크 포인트에서 함께 출발한 정혜경씨가 앞서 나갔다. 지난달 한강 둔치에서 함께 훈련할 때도 싱싱한 에너지가 느껴지던 여성이었다.
“먼저 갈게요.”
정혜경씨가 앞서 가면서 남긴 말 속에도 한강 둔치에서 느꼈던 에너지가 시들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인 나보다 더 강인한 것 같아요.”
인백씨가 앞서 가는 혜경씨를 보며 감탄조로 말했다.
“귀신 잡는 해병은 총을 들고 전투를 할 때 용맹을 떨치는 거 아닌가?”
“관장님, 해병대 훈련이 얼마나 빡센데요.”
“아무리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어도 이십 년이 지났잖아.”
“그래도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인데요.”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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