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985년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던 당시 처음으로 농인과 수어에 대해 알게 되었다.

두 손으로 빚어내는 농인들의 언어인 수어에 매료되었고 30년이 흐른 지금도 수어는 여전히 내게 너무 매력적인 언어이다. 그리고 수어를 통해 접하게 된 농 사회는 내가 알고 경험해 왔던 사회와는 또 다른 모습들을 갖고 있었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 사회에서 형성되는 그들만의 문화인 농문화를 알아가면서 시각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그들만의 문화에 감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농인들을 만날 당시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들만의 문화가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중에서도 청인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질문을 통해 농인들의 특성을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농인들은 스스럼 없이 상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 지금도 그 여자랑 살아?” 혹은 “ 그 때 살던 남편이랑 계속 살고 있어?”

이런 질문을 하는 농인을 보면서 너무 무례한 질문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받은 농인 역시 스스럼 없이 “ 그래 ” 그러거나 “ 아니, 그 사람과는 헤어졌고 000랑 살아” 이런 식의 대답을 스스럼 없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고, 그때까지도 그런 질문을 하는 농인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농인 여성을 십여년만에 만나게 되었다. 내가 그 농인 여성을 만나던 당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 농인에게 “ 딸 많이 자랐죠? 지금 몇 살이나 됐어요?” 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 농인의 대답이 의외였다.

“무슨 소리야? 나는 아들만 있는데,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아니, 무슨 말이예요? 초등학생 딸이 있잖아요...”

“아닌데...”

우리의 대화는 계속 엇나갔고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 서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헤어지게 되었다. 발길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서야 나는 그 농인이 내가 알던 남편과는 이혼을 하고 다른 사람과 재혼을 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나는 오래 전 그 농인의 가정상황을 기억하며 질문을 했고 그 농인은 현재 자신의 가정상황에 대해 대답을 했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엇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도 그 분을 만났을 때 다른 농인들처럼 “지금도 그 남편과 살아요?”라고 질문을 했다면 “아니, 그 사람과는 헤어지고 다른 사람과 재혼했어” 라는 명쾌한 답을 들었을테고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오랜만에 만난 농인들이 왜 그런 질문을 하게 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청인들은 오래 만나지 못해도 유선전화를 통해서 서로의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서로에 대한 소식을 알 길이 없었던 농인들이 오랜만에 만났을 때 원활한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질문은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어사용자인 농인들끼리 결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때로는 상대의 전 배우자나 현재의 배우자를 다 아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대화를 하는 경우 전혀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결과가 생긴다.

요즘 전국의 농인 관련 행사에 참석하다 보면 오랜만에 만난 농인분이 내게 “남편과 지금도 살아?” 이런 질문을 종종 하시고 나 역시 “네, 아직 바뀌지 않았어요” 라고 웃으며 대답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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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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