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에서 교감신경체계를 가진 인간으로 어찌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kbs 방송 화면 캡쳐

“관장님, 아침부터 백사막이 시작되고 있어요. 왠지 이 백색사막은 기분이 나빠요. 흰빛이 주는 느낌때문에 그런가 봐요. 모든 게 증발되어 버렸다는 강렬한 느낌 말이에요.”

흰 빛, 그 순수의 정화가 지닌 강렬함에서 전율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사막, 사하라는 불가사의한 대지다.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가공할 햇볕과 살인적인 더위와 상상을 초월한 지형만이 아니다. 대지의 빛깔마저도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냉혹한 아름다움 속에 있는 잔인함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

나는 사하라의 빛깔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상상할 수는 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빛나는 백색 대지, 그리고 정적, 체액을 고갈시키는 더위, 교감신경체계를 지닌 인간으로서 어찌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오감의 촉수를 곤두세우고 백색 사막을 달렸다. 지표면의 막을 파열시키며 달리는 내 발걸음 소리와 헉헉대는 숨소리가 백색 사막의 정적을 깨뜨렸다. 아니 정적을 깨뜨리며 달리고 있는 게 아니라 정적이 내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다섯 살 때였던가? 여름이었다. 식구들이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마당에 있는 지렁이를 보았다. 햇볕에 말라서 쪼그라든 지렁이를 보는 순간 숨이 막히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렁이의 죽음과 눈부신 햇살과 아무도 없는 집안에 고여 있는 정적이 다섯 살 어린 나를 숨 막히는 두려움에 빠지게 했다.

그 때의 두려움의 잔재가 아직도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지금,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이 아프리카의 대지에서 정적의 무게때문에 어린 나이에 느꼈던 그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나는 지금 이 가없는 사막에 쌓여 있는 정적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관장님, 백사막이 거의 다 끝나고 있어요.”

인백 씨의 목소리가 정적의 심연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 나를 구해주었다. 이 백사막이 끝나면 지표면에 잔돌이 깔려 있는 황무지이거나 바위투성이인 험난한 지역일 테지. 그도 아니면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구릉 지대가 펼쳐지겠지.

되풀이되는 거친 대지 위를 달려야 하는 몸은 최악의 상태에서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지면이 딱딱해지면서 발바닥의 통증이 새롭게 뻗치기 시작했다. 발을 땅에 딛기가 두려울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어금니를 앙다물고 발걸음을 떼었다. 지표면과 내 몸의 체중 사이에서 발바닥은 극심한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었다.

뒤쪽에서 스틱 짚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제일 후미에서 달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스틱 소리를 들으니 왠지 반가웠다.

“미스터 송, 뒤에서 보니 당신은 레이스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요.”

이번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약혼녀와 함께 캐나다에서 온 잭슨이었다.

“아니오. 나는 지금 고통의 가시밭을 달리고 있소. 내 몸의 세포들이 모두 고통의 신음으로 합창을 하고 있소.”

“미스터 송,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세포들이 파열되어 버릴 것 같아요. 당신의 발에는 신이 특별히 주신 눈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거친 땅을 거침없이 달릴 수 있어요?”

잭슨의 약혼녀 레이첼이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말했다.

“나의 레이스 파트너가 눈이 되어 준 덕택이죠.”

“두 사람의 레이스는 아름다워요. 감동이 주는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에게도 힘을 주지요.”

“고마워요. 미스 레이첼. 미스터 송은 내게 끊임없이 힘을 주고 있어요. 그 힘이 나를 이끌어 주고 있지요.”

인백 씨의 말이 새삼 고마웠다.

“우리 좀 쉬었다 가요.”

“오케이.”

레이첼이 내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반색을 했다.

배낭에서 양갱을 꺼내어 레이첼에게 건넸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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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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