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파할 거리는 40.5㎞, 둘째 날과 비슷한 거리다. ⓒkbs 방송 화면 캡쳐

사막은 먹구름이 낮게 깔린 바다 같았다. 자욱한 모래와 용광로에서 갓 빠져나온 듯한 열기를 동반한 바람이 태양을 가리고 황금 빛 모래구릉을 마구 할퀴었다.

땅위의 모래입자들이 모두 살아서 하늘로 비상을 서둘렀고 맹위를 떨치던 태양은 모래입자들에 가려져 구름 속의 달처럼 빛을 잃었다. 낮도 밤도 아닌 제3의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땅속 저 깊은 데서 울려오는 듯한 음산한 울림과 막강한 힘을 지닌 바람소리가 버프로 감싼 귓속을 울렸다. 앞 다투어 비상해 난무하는 모래입자들이 허공을 메우고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모래입자들은 미세한 침을 지닌 벌레들처럼 옷깃을 붙잡고 있는 손등을 공격했다. 손등에 무수한 바늘이 찔러대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사막의 길은 발이다. 지난 사흘 동안 달려온 내 발걸음이 사막의 길이었다. 우주선 아폴로에서 내린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것은 곧 우주의 길이 되었다.

지금 사하라를 달리고 있는 레이서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길을 달리고 있다. 그 길은 그들 자신의 발걸음이다.

오늘 주파할 거리는 40.5㎞, 둘째 날과 비슷한 거리다. 어제 기온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여름 최고 기온이 38℃를 넘지 않는 온대에서 태어나 성장한 우리 한국인들에게 50℃가 넘는 기온은 그야말로 살인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 생명의 시원이 언제 부터인지를 알지도 못하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지금 내 몸의 유전인자는 온대 기후에 맞게 진화되어 왔다.

‘송경태, 나는 그 생명이 머물다 가는, 엄밀히 말하면 그 생명을 어느 구간까지 운반해주는 운반체일 뿐이다.’

그게 바로 내 몸이다. 물론 내 아들 민과 원이 그 생명을 이어 받아 공존의 대물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생명에게 가혹 행위를 하고 있다. 온대 기후에 알맞게 진화되어 온 그 생명에게 잔인한 가혹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이 숭고한 까닭은 그 오랜 세월 동안의 대물림 때문일 것이다. 그런 숭고한 생명에게 스스로 가혹 행위를 하고 있는 나는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받지 못할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주파할 구간이 길어서인지 다섯 시에 출발을 했다. 대기에는 습기를 머금은 안개가 자욱했다.

사막의 안개, 사막 기후의 형성과정을 모르는 나로서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모든 수분을 증발시키고 생명마저도 증발시키려는 사막에 안개가 끼다니.

인백씨의 레이스 속도가 빠르다. 인백씨와 보조를 맞추려고 내 딴에는 애를 쓰지만 아무래도 느릴 수밖에 없다. 인백씨의 배낭에 연결되어 있는 로프가 현악기의 현처럼 팽팽했다.

“인백씨, 지난밤에 에너지 충전이 잘 되었나 봐?”

“오늘 구간이 길어서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서두르고 있나 봅니다.”

“몸에 서두를 에너지가 남아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해가 뜨면 이 에너지를 말려 버릴 테니까 서두르는 모양입니다.”

지면은 안개 입자의 수분 때문에 푸석거림이 덜한 것 같았다.

나도 레이스 속도를 빨리했다. 내 몸의 동력을 최대한으로 출력시켜서. 새벽의 어둠은 곧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 어둠 속에 있는 신선함과 안개 입자가 머금고 있는 수분도 사라질 것이다. 뒤이어 가공할 햇볕과 살인적인 기온과 공포의 모래 폭풍이 사막의 침입자들을 응징할 것이다.

“헤이 미스터 송, 굿 모닝.”

영국인 브랜튼의 활기찬 목소리였다. 이번 레이스를 끝내고 내년에 남극 레이스에 도전하겠다는 친구다.

브랜튼은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날 밤,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친교의 시간을 가졌을 때 내게 가장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명문 대학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증권사에서 일을 하는 브랜튼은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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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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