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의 사하라사막 마라톤 일정을 소화하고 베이스캠프로 향하고 있는 송경태씨. ⓒkbs 방송 화면 캡쳐

어제보다 기온이 3도나 높았다. 지표 온도가 58℃를 오르고 있었다. 오늘의 32.1㎞ 구간 중에서 이제 남은 거리는 2, 3㎞ 정도이리라.

몸이 가장 힘들어 할 시점이다. 이제 에너지가 고갈될 대로 된 몸을 끌 수 있는 힘은 오직 정신력뿐이다.

목이 마르다 못해 혀의 침샘까지 말라 버렸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내가 듣기에도 가련하다. 억지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메마른 소금버캐가 끼어 있는 옷이 서걱거렸다.

체력이 소진되자 정신까지도 초점이 흐려진다. 카타리나가 해준 격려의 말도 가물가물 사라져 버리고 오직 남아 있는 건 움직여야 한다는 본능뿐이다.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가 본능의 지시에 따라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아내가 내게 쏟아 준 정성을 생각했다. 홍삼 엑기스, 장어 곰탕, 사골 곰탕, 신선한 유기농 채소, 제철 과일, 내 몸속에는 아내의 정성이 들어 있다. 아내의 정성이 내게 마지막 힘이 되어 주리라. 힘내라 송경태!

“관장님, 캠프가 보입니다.”

한 발 앞서 구릉 위에 올라선 인백씨의 균열된 목소리는 천국에서 들려오는 음성이었다. 몸과 달리 정신이 그 복음소리에 즉각 반응했다.

캠프에서 기다리고 있을 민이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에 민이와 동행한 것에 대해 가벼운 후회가 스쳤다. 내가 이처럼 고생하는 것은 순전히 내 결정의 결과이지만 이러한 나를 바라보는 민이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리지 못했기에.

캠프로 들어서자 민이가 달려와 배낭을 받아 주었다. 우리 팀이 쉬고 있는 텐트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침울했다. 오늘 하루 우리 팀 탈락자가 다섯 명이나 되었다.

그중에서 이번 레이스의 최연소 참가자인 장한 군의 탈락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아들 민이와 동갑인 장한 군에게 마음속으로 많이 성원을 보냈는데. 장한 군과는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한강 둔치에서 훈련을 함께 했다. 장한 군은 정육점, 슈퍼마켓, 찜질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니는 자립심이 강한 청년이었다.

이번 레이스에 참가하는 비용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마련했다고 했다. 이번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책을 가득 담은 배낭을 메고 집 근처 산을 매일 뛰었을 정도로 자신에게 충실한 청년이었다.

알파미(凍結米)로 저녁을 먹고 민이와 모처럼 얘기할 시간을 가졌다.

“민아, 이번에 너를 괜히 오자고 했구나.”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인데요. 이런 기회를 아무나 쉽게 만날 수 없잖아요.”

“그렇긴 하다만 내가 고생하는 걸 네가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물론 아버지는 힘들고 고생스러우시겠지만 전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이번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아버지는 최고의 슈퍼스타예요.”

“네가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긴 하다만, 나 때문에 마음 졸이고 있을 널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 괜한 걱정 하시느라 컨디션 떨어뜨리지 마세요. 제가 결혼을 해서 애를 낳으면 할아버지가 사하라 사막 250㎞를 어떻게 달렸는지를 들려 줄 거예요.”

“그래, 민아, 아버지가 꼭 완주할게.”

“그러셔야지요. 전 믿어요.”

이역만리 사막에서 아들과 마음속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게 특별한 시간으로 오래 기억되리라. 아들이 미더우면서도 대견했다.

캠프 한쪽에서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서 국경을 넘는 우정을 다지고 있었다. 사막의 밤공기가 차가웠다. 하늘에서는 별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노래를 부르며 빛나고 있으리라.

오늘 32.1㎞를 달린 나의 기록은 8시간 43분 50초였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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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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