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녀석 모두 흔쾌히 가겠다고 해서 신청을 했다. 원이는 스무 살이 안 되어 자격이 안 되고 스물한 살 민은 선정되었다.

민이 다니는 학교에 해외 자원봉사를 하러 가니 출석에 대한 배려를 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대답은 불가였다. 할 수 없어서 한국방송공사에서 협조공문을 보내고 담당 교수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부탁을 한 끝에 간신히 승낙을 받았다.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학점을 따는 게 학생의 본분이긴 하지만 젊은 날에 체험의 장과 교류의 폭을 넓히는 것도 학점 못지않게 중요하리라.

오아시스! 그 파라다이스에서의 꿀맛 같은 휴식의 미련을 떨치고 다시 주로로 나섰다. 오아시스를 벗어나서 조금 달리자 모래와 자갈이 섞인 지역이 시작되었다.

모래만 있는 것보다는 발이 빠지지 않아서 달리기가 조금 수월했지만 자갈 때문에 물집이 터진 발바닥이 미끈거려서 걸음을 옮기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이곳에 오면서 체험자들 조언을 참고로 평소 신던 신발보다 10mm 큰 신발을 신고 왔는데 신발이 꽉 조인다. 발이 부을 정도로 대단히 성이 난 모양이다. 문득 신발 메이커들이 사막 레이스 전용 신발은 왜 안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갈 섞인 모래밭이 끝나고 지면이 딱딱해지면서 굴곡이 이어졌다.

“관장님, 조금 있으면 최악의 상황으로 지형이 바뀔 거예요.

지금 계곡으로 진입했는데 바닥이 온통 바위투성이에요.”

코스 개설자의 치밀하다 못해 간교하기까지 한 지형 안배에 원망보다는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처음으로 오아시스에서 꿀맛 같은 휴식을 맛보게 한 후 바위투성이 계곡으로 몰아 넣다니. 그 치밀함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인백 씨도 나도 바위 등을 기어서 오르내리며 나아갔다. 서서 달리는 동안 햇살을 수직으로 받았지만 지금은 등판 위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햇살을 받는 면적의 차이에서 느끼는 체감온도의 차이가 극명하게 실감되었다.

바위를 오르고 내려갈 때마다 내 손을 잡아서 끌어주고 밑에서 발 디딜 데를 받쳐주는 인백 씨는 나보다 몇 배의 체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바위투성이 계곡을 한 시간여의 고생 끝에 빠져 나왔다. 오아시스에서 충전한 에너지는 물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몸이 비축해 둔 에너지마저 소진되어 버렸다.

인백 씨와 나는 내팽개쳐진 걸레 같은 몰골로 주로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시야가 툭 트인 평원이 펼쳐지고 그 끝자락에 모래구릉 지대가 있다고 했다. 주변에는 아이스크림처럼 생긴 백색 바위들이 드문드문 서 있다고 했다.

“인백 씨,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뭐야?”

“얼큰하고 따끈한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요.”

“뜨거운 것에 질리지도 않았어? 난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물냉면 한 그릇 먹었으면 원이 없겠는데.”

“그러고 보니 카이로에서 마셨던 시원한 맥주도 생각나네요.”

물냉면 한 그릇, 맥주 한 컵이 꿈에서나 맛 볼 수 있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음식이었다.

“인백씬 사하라에 올 때 집에서 반대가 없었나?”

“난 집에서 내어 놓은 남편이에요.”

“나도 집에서 포기한 남편인데 동지끼리 만난 셈이군.”

“그래도 관장님은 나하고는 다른 데가 있잖아요. 똑같이 사막레이스를 해도 인간승리의 귀감으로 본다든지 하는 인식의 차이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만 봐서 그래. 이번만 해도 인백 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단 1㎞도 못 뛰었을 거야. 참, 지난번 대관령 산악 마라톤대회에서 잘 뛰던데 훈련을 평소 많이 하나 보지?”

“직장 때문에 평일은 어렵고 주말에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산에 올라가요.”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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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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