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창립 60주년 행사를 가졌다. 그렇다면 창립은 60년 전인 1954년 9월 경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한국불구자협회 발기인회를 가지고 모임을 시작한 것이 1954년 9월 20일이다. 초대회장이 고 백낙준 박사였는데, 그는 교육학자로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이자 교육부장관을 지낸 바 있는 인물이다.

한국불구자협회는 1954년 12월에 국제 RI에 가입을 하였다. RI는 한국말로 국제 재활협회라는 의미이므로 사실상 전문가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재활전문가들의 모임으로 처음부터 출범한 셈이다.

여기서 최근에 장애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재활이라는 말에 저항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재활은 장애인을 극복의 모델로 보고, 의료적 관점에서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재활협회는 단어를 원어를 밝혀 적지 않고 약어로 RI라 하여 고유명사화하고 있으며, 리해블리테이션이 아니라 라이트 엔드 인클루션이라고 하여 권리와 사회통합이라는 말로 의미를 변경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국제 RI 총회에서는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용은 하였으나 그렇게 변경을 합의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도 RI KOREA라고 불리우고 있다.

사람들은 왜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냐고 묻는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당시 장애인복지의 민간단체의 대표격 행사를 하고 있던 재활협회가 자신의 창립일을 장애인의 날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활협회는 1954년 9월 20일이 발기인회일이고, 창립총회를 한 날은 1957년 1월이며, 법인허가를 받은 것은 1958년 10월이므로 4월 20일과는 무관하다.

4월 20일은 재활협회에서 재활의 날을 제정하여 장애인을 위한 각종 행사를 해 왔는데, 그 재활의 날이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의 날로 정함으로써 정해진 것이다.

재활협회가 자신들이 해 오던 장애인 기념행사일을 4월은 봄날이라 행사하기도 좋다는 이유로 장애인의 날로 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하였지만 협회창립일을 장애인의 날로 하였다는 것은 오해이다.

재활협회가 장애인을 교육시키거나 의료적 치료를 하는 등 의료모델로 출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전문가 집단으로서 당사자집단은 아니다.

그렇지만 설립목표는 상당히 수정되어 현재는 장애인의 사회적 주체성을 인정하고 사회통합을 위하여 사회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당사자의 주체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 당사자를 과반수 이상 의사결정구조에 넣겠다는 것 등 현재 진통을 앓고 있는 상태이다.

장애인단체 중 60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가 그리 많지 않다. 당시에도 장애인은 많았을 것인데, 왜 장애인단체들은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한 것일까?

시각장애인 단체 중 안마사협회의 역사는 한국에 안마사 교육이 실시된 1913년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역학을 위한 장애인 단체의 역사는 조선시대 맹청으로 올라간다.

사단법인의 설립으로 본다면 1934년에 대한역리학회는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장애인단체들은 4·19나 5·16, 1980년대의 군부정권 등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단체들은 해산이 되거나 통합명령이 되어 사회복지회에서 다시 분리되어 장애인단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후반이므로 관변단체가 아닌 순수한 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것이다.

재활협회에서는 창립 60주년을 맞아 한국장애인복지 100년 인물사를 편찬했다.

이것은 장애인단체들에게 추천을 받아 정리를 한 것인데, 보다 객관적으로 정리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먼저 전문가 집단에서 장애인 당사자보다는 전문가를 많이 추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재활협회 내부 인사를 많이 다루었고, 공적의 객관성이나 기여도의 경중을 다루기에는 보다 정치적 판단이 포함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들이다.

그저 재활협회 내부에서 100인을 한번 선정해 본 것이고, 그것은 재활협회의 안일 뿐이며, 선정된 인물들은 장애인을 위한 일들을 한 것은 분명하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100인 인물사를 출판하여 판매를 하면서 사람들은 마치 장애인계가 선정한 역사적 기록물로 인식하면서 선정절차의 공정성에 불만을 말하기도 한다.

인물 선정은 종합, 의료, 교육, 직업, 인권, 재활공학, 예술·체육, 정치·행정, 복지로 분류하였다.

장애인단체장들은 종합으로 분류하고, 여러 분야에 기여한 경우도 종합으로 분류하였으나 개인적 기여도가 특별한 경우에는 교육이나 재활공학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복지에 기타가 포함되어 편의시설과 장애인계 언론인, 단체 종사자가 들어가고 보니 진정 장애인복지의 기여 순위와 맞지 않은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강병근, 배융호씨와 같은 분이 복지로 분류되고 백종환과 최규옥씨와 같은 언론인이 복지로 분류되다 보니 우리가 복지에 기여한 분을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 물론 선정된 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지만, 우리가 복지라는 타이틀을 생각할 때에 떠올리는 인물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교육에서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원로들이, 정치에서는 역대 장애인으로서 국회에 진출한 인물이 총망라되다 보니 재활협회 전문분과위원들과 사회복지 교수, 재활협회 관련 인사들로서 재활협회 인물 100년사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 비판적으로 보지 말고 재활협회가 뽑은 장애인복지 인물사라 편하고 생각하면 좋을듯하다.

100인은 기여 분야별로 약 10여명으로 나뉘어졌고, 그 중 고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럼 시각장애인은 100명 중 명 사람이나 등장할까가 궁금해진다. 종합편에서는 한국의 헬렌켈러라 하여 고 강영우 박사를 소개하고 있다. 사실 강영우는 헬렌켈러와 같은 중복장애인은 아니다.

강영우 박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장애인정책을 위해 일했으며, 한인교포 2세의 교육문제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복지정책과 복지 패러다임, 재활공학 등을 한국에 소개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였다.

의료 분야에서 시각장애인은 없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고 공병우 박사가 소개되었다. 3벌식 타자기를 개발하여 시각장애인의 문자생활을 도우려 하였으며, 시각장애인 재활센터, 맹인부흥회를 설립하여 중도 장애인의 역량강화와 사회적응을 도우려 하였던 인물이다.

교육과 직업 분야의 경우 시각장애인은 없다.

인권 분야에서는 고 이익섭 교수가 선정되었다. 사회복지학과 대학교수로서 많은 장애인정책을 연구하였고, 한국 DPI 회장과 장애인단체총연합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장애인 운동에 기여하였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제정에서 한국대표로서 활약을 하였다.

재활공학과 예술·체육 분야에는 시각장애인은 없다. 정치분야에서 정화원과 최동익 의원이 선정되었다.

정화원 전 의원은 시각장애인 최초의 국회의원이었고, 부산한시련 지부장으로서 안마업의 발전을 위해 일했으며, 장애인신용금고를 열고, 장차법과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법을 발의하는 데에 공헌하였다.

최동익 의원은 실로암복지관을 운영하는 법인설립과 시각장애인 복지 프로그램 개발, 한시련 회장으로서 비상한 아이디어와 로비력으로 정책을 만들어 나갔으며, 국회의원이 되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00인의 인물 중 시각장애인 수가 너무 적어 장애인계에서는 시각장애인의 비중이 낮다는 것은 장애인의 중심에 시각장애인의 역량이 아직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인물 선정에서 비장애인 전문가도 많고 장총과 장총련 회장을 비롯하여 역사의 중심에 시각장애인이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이러한 인물사의 정리에서 보다 시각장애인의 인물들이 두드러지게 하려면 결국은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