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짙어 봄과 여름 사이를 오가는 계절이다. 두 계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어느 날 강 따라 물 따라 춘천으로 달려갔다.

경춘 전철과 ITX 청춘열차가 운행되면서 춘천여행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벼워 진건 전철뿐만이 아니다. 춘천에 장애인 콜택시가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이동이 편리해졌고, 춘천역에서 소양호까지 저상버스도 수시로 운행해 여행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춘천하면 소양호수와 댐을 빼놓을 수 없다. 소양 땜은 천구백육십년대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사회 기반시설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여건으로 댐 건설이 시작됐다. 댐이 만들어지면서 인근에 수많은 마을이 소양댐 물 속에 잠겼고 일대에는 호수가 생겨났다. 소양댐은 워낙 크고 웅장해서 댐 정상에 서면 왠지 위압감이 든다.

댐에 올라오니 소양강 처녀가 생각났다.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국민가요처럼 불리는 소양강 처녀도 댐 정상에서 소양호를 지긋이 내려다보면서 그리운 사람을 한없이 기다리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서 소양강 처녀도 나이가 들었겠지만 동상은 열여덟 딸기 같은 소녀모습 그대로다.

소양댐은 수도권 인구 2천만 명이 1년 동안 먹을 물을 담고 있다. 댐에 담긴 물을 볼 때마다 저 많은 물을 어떻게 담고 있을까 경이롭기까지 하다. 소양강댐 정상에서 팔각정 전망대까지는 왕복 2km가 넘는 걷기 코스도 있다. 이 길 곳곳은 물을 담고 있는 댐 안팎의 풍경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

걸으면서 댐 주변과 풍경을 천천히 관찰할 수 있고,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초입에선 소양댐 건설에 참여하면서 목숨을 잃은 서른일곱 명의 순직자 유령비도 만난다. 순직자들의 흘린 땀을 기억하고 있는 위령비 앞에 서서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위령비를 뒤로하고 팔각정에 올라가 소양댐 풍경을 찬찬히 스캔한다.

팔각정에서 보는 소양호는 댐 정상에서 보는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막힘 없이 탁 트인 전망은 4월 세월호 침몰 시간에 멈춰 있는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같다. 호수는 첩첩산중에 둘러싸여 잔잔히 일렁인다. 흐린 하늘 끝은 호수와 맞닿아 있고 비 갠 오후 시간은 나를 과거로 안내한다.

십여 년 전, 여름 장마가 한창인 칠월에 여객선은 청평사 입구에 한 무리의 여행객을 내려 놓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그 때도 지금처럼 비개인 오후라 그런지 청평사 계곡물은 폭포처럼 쏟아졌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결은 소양호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달력에서나 본 듯한 폭포 그림이 빠져 나와 청평사 계곡으로 이사 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양호를 찾을 때마다 비를 동반한 것 같다. 기억조차 희미한 어느 해 늦 가을. 그 때도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기억을 거슬러 보면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양구로 향한 여행이 떠오른다.

도시의 시간은 가을의 중간에서 서서히 흐르고 있었지만 소양호 가을은 겨울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강원 내륙의 가을은 스산했고 소양호는 쓸쓸해 보였다. 양구선착장에서 내릴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도시와 다르게 양구 읍내엔 몇몇 가게에서만 불빛이 세어 나오고 찬바람만이 거리를 종종 거렸다. 그 때의 가을은 영화 만추의 그것과 닮았다. 영화에서 가을은 두 남녀의 거부할 수 없는 현실과 빈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훈(현빈)은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한량으로 살아간다. 애나(탕웨이)는 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 한다. 살인자가 가야 할 곳은 교도소뿐이었다. 수감생활을 하던 중 부모님의 사망소식을 듣고 3일간 휴가를 받아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훈을 만났다.

훈은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서로의 이름도 몰랐던 애나와 훈. 호기심뿐이던 훈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표정 없던 애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를 때쯤, 누군가 훈을 찾아오고 애나에게도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마치 애나처럼 당시에 소양호수도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비가 온 후여서 그런지 초록으로 만개한 소양호는 늦가을 풍경처럼 스산해보였다.

팔각정을 내려와 물문화관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물문화관은 휴게실과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육십년 대 후반 지하철 1호선과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북한강 유역의 유일한 다목적댐으로 소양강 댐이 생겨나면서 춘천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사랑받게 됐다.

이후 연간 백만 명이 넘는 여행객이 소양강 댐을 찾는다. 선착장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청평사로 가는 배편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여행객의 접근을 막고 있다. 손상이 없을 때의 나와 손상이 있는 후 나의 본질은 변함없는데 그 때처럼 유람선을 승선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제쯤 유람선을 이용해 청평사에서의 추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날을 기다리며 뱃길 대신 육로가 가는 방법으로 소양호와 청평사를 다시 찾아야겠다.

•가는 길

용산역에서 itx 열차 이용. 상봉역에서 경춘전철 이용.

춘천역에서 150번 저상버스 승차 소양댐까지 이동, 그것도 귀찮다 싶으면 춘천 장애인콜택시 이용.

즉시 콜 033-255-8259, 이용 30분전예약. 요금은 일반택시 요금에 40%

•먹거리

소양댐 아래 웃 샘밭 종점 앞에 있는 '왕촌 춘천 닭갈비' 1인분에 1만 2천원

전화 033-242-6878

•장애인화장실

소양댐 주차장과 장애인 화장실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소양호. ⓒ전윤선

소양호수 아래 물길. ⓒ전윤선

물문화관 에서 본 소양호. ⓒ전윤선

소양강 처녀 동상. ⓒ전윤선

소양호 아래 있는 춘천 닭갈비 집. ⓒ전윤선

춘천의 대표 먹거리 닭갈비. ⓒ전윤선

닭갈비집 내부. ⓒ전윤선

소양호 장애인 화장살(휴지걸이 부실). ⓒ전윤선

춘천역에서 소양호를 오가는 저상버스.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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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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