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기술 중에 하나가 ‘듣기’이다. 물론 ‘말하기’ 기술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말하기’ 기술은 연습과 훈련을 통해 익힐 수가 있다.

‘말하기’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책과 강좌들이 있다. 대중 앞에서 말하기, 1분 스피치(speech), 자신감을 얻는 말하기, 설득하기, 논리적으로 말하기 등등, 다양하다. 이런 ‘말하기’ 기술은 연습과 훈련 과정, 결과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이나 성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듣기’와 관련해서는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고 다양하지도 않다. ‘듣기’에 관해 찾아보면 ‘외국어 듣기’나 ‘수업 시간에 효과적으로 듣기’ 정도가 고작이다.

사실 이런 ‘듣기’는 굳이 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 외국어 듣기의 경우 ‘듣기’ 기술보다는 외국어 실력이 필요하고,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 ‘듣기’ 기술 없이도 수업을 잘 듣게 된다.

교육을 할 때 참 중요한 기술 중에 하나가 ‘듣기’인데, 이 ‘듣기’ 기술은 학습자보다 교육자에게 더 필요하다. 1차적 정보 전달이 끝났다면, 교육자가 듣고 학습자가 말할 때 교육성과가 훨씬 좋게 나타난다.

과거 한 학급 아동이 60명이 넘던 시절에는 교사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지금은 학생 수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교사가 ‘듣기’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기에는 학생 수가 많다.

들어줌으로써 가르치는 이 기술은 가정에서 부모가 사용하기에 좋은 교육 방법이다. 이 때 부모는 교과의 내용을 미리 학습하거나 꼭 알아야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떻게 들어야 잘 들어줄 수 있는지, 듣기의 귀재 모모에게 배워보자.

일곱 살 여진이의 인생 이야기 <우울한 내인생 월, 화, 수, 목, 금><토, 일 즐거운 내인생>. (최여진, 2011) ⓒ최지영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의 주인공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는 책에서 인용. 미하엘 엔데 지음/한미희 옮김. 「모모」/비룡소.)

모모는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해답을 찾게 한다. 모모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싸우던 사람은 화해의 방법을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사려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어떻게 들어주는 것일까?

우선 ‘듣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애석하게도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이다. 우선은 아이에게 지시하고 잔소리하던 시간을 듣는 시간으로 바꿔보자. 듣는 것이 곧 가르치는 것이란 것을 이해하면 최소한의 시간은 얻을 수 있다.

들을 때는 비판하지 않고 듣는 것이 좋다. ‘듣기’에서 놀라운 점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말도 되지 않는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곧바로 맞받아치고 틀렸다고 지적할 필요는 없다. 지적을 받을수록 아이들은 그에 대한 변명과 그 변명을 옹호할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 잘 들어주고 아이의 다음 말을 기다리면, 아이는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자신이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들어줄 때 추임새나 질문과 같은 부추기는 기술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할 때 부모가 귀신 같이 알아차리는 것처럼 아이 역시 부모가 의도를 담아 말할 때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아이가 어떤 말을 해 주기 바라면서 의도를 넣어 ‘그래서? 그렇다면?’이라고 하면 이는 ‘듣기’보다 오히려 ‘말하기’에 가까운 태도다.

이런 ‘듣기’는 꼭 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가르쳤던 아이들 중에는 말을 잘 하는 아이들보다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귀로만 들으려 하면 들리지 않지만, 눈과 귀를 모두 열면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눈으로 들을 때도 필요한 것은 똑같다. 시간을 들여야 하고, 비판이나 의도를 담지 않아야 한다. 교육 효과 역시 같다. 이미 정보 전달이 끝났다면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 더 지시하기보다 한 번 더 기다려 줄 때 아이들의 수행능력도 높아진다.

‘듣기’의 교육성과는 아이의 감정 표현이나 행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할 때, 학식이 높은 부모로부터 한 번 더 강의를 받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인다. 내용을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는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한 번 더 정리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의 두뇌는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시간은 교사보다 더 훌륭한 스승이다.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 주자. 스스로 이야기하게끔 들어주자.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이는 더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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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칼럼리스트
교육학 석사(특수교육 전공). 아이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일에 있어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 시스템이라고 해도 모든 학생들에게 좋을 수는 없으며, 전공 서적을 읽는다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몫으로 해야 할 고민들 중 몇 가지 주제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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