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한국인은 예쁘고 화사한 ‘이발소 그림’들을 좋아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40여 년 전 빛고을 광주의 거의 모든 다방에서는 사면 벽을 온통 시원한 산수화나 제법 화사한 화조화(花鳥畵)로 도배했다. 이 시기 동네 이발소에도 유화로 그린 풍경화가 한 두 점 이상씩 걸려 있었다.

다방과 이발소 그림의 차이점은 동양화 물감과 유화라는 재료 밖에 없다. 산수화와 풍경화의 동일점은 둘 다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전문적 개념을 빌자면 관념적 회화라 하겠다.

시원하게 그려진 풍경화를 보며 머리를 깎고, 다방 아가씨와 함께 산수화를 감상하며 커피 한 잔 마시는 시대였다.

이 시기 대다수의 그림들은 북한의 풍경화처럼 시원스럽고 상큼했다.(?) (이발소 그림과 북한 그림-아래 작품 주소 참고 )

21세기가 된 지금은 어떤가?

한국에서 그림이 가장 많이 팔리고 화가들이 행세 좀 하던 시대가 60~70년대 박정희 정권 무렵이었다면, 박정희 정권의 몰락과 함께 양적으로 소비되던 다방과 이발소 그림도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현재 거래되는 회화는 질적으로 약간 나아졌다고 애써 자위 할 수 있지만, 과연 그렇게 되었는지는 필자도 아리송하다.

그나마 추상이라 불리는 비구상(사물을 닮게 그리는 구상의 반대말)도 팔리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발소 그림에서 약간 향상된 ‘보기 좋은’ 작품만이 팔린다.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꽃이나 새, 나무 등이 포함된 상업화를 그려도 공예품처럼 물감흔적 하나 없이 깔끔하고 화사하게 그려야 하고, 장식적 요소는 꼭 신경 써야 하며, 화가는 뭔가 대단한 이력 서너 개쯤은 있어야 팔릴까 말까 한다. 인물화를 포함하여 주제가 좀 드러난 개성적인 작품은 아예 팔리지도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북한의 풍경화나 산수화를 보아도 남한의 시각과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체제가 다르고 정책이 다르며 오랫동안 단절이 되었어도 그림을 보고 선호하는 감각 등은 어찌 그리 똑같은지 신기하다.

원인은 5백년간 조선시대 체제를 쌓아 온 북방계 우뇌가 만들어 놓은 시각적 유전자와 전통 탓이고, 그런 가치 척도 하에서 조성된 감성이 한국인으로 하여금 그림에 주제가 뚜렷하게 표현되거나, 뭔가 의미가 있으며, 감상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하는 작품들을 부담스러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수백 번 보아도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나지 않고 그저 시원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다방이나 이발소 그림풍의 표현은 감성을 전담한 우뇌의 선호관념인데, 박정희 정권과 함께 사라진 이 같은 표현은 1990~2000년대 본격적인 컴퓨터 시대에 들어 다시 나타난다. 각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재림한 것이다.

우뇌를 적극 활용해야 버티고 살 수 있는 한국적 사회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이발소 그림은 영원한 명작인 셈이다.

반면 서양의 회화작품들은 당시대의 철학과 문학 등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곧 미술사조(思潮)라는 사상의 흐름이나 이데올로기 따위가 버무려진 그림들이 특정 시기에 나타나고, 이 흐름은 일반대중과 함께 호흡한다. 한국처럼 미술 따로, 생활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뇌 보다 좌뇌를 활용하는 서양미술은 객관성과 과학적 방식을 차용하여 감상자나 소비자와 공감한다.

소속감과 흑백론의 이분법적 가치보다는 개별적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우울하거나 차갑고, 언뜻 괴기하고 두통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도 많지만 한국과는 달리 이런 작품들이 대중에게 곧잘 팔린다.

반면 한국은 예쁘고 화사하며 아무런 철학이나 사상도 없이 그저 깔끔하고 보기 좋아야 겨우 팔린다.

대신 추상이나 비구상이라도 유명 교수라는 직함과 적당한 인맥정도가 있으면 ‘돈’으로 생각하거나 재력과시용으로 구입한 뒤 창고에 쌓아 놓는다. 검찰에 압수된 ‘전두환의 갤러리’가 이를 반증한다.

결국 이성을 기반으로 한 철학과 가치관이 얄팍한 국민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뇌보다 좌뇌를 쓰는 개별문화의 시대가 와야 서양처럼 천재적 작가의 작품이나 그 외 다양한 그림들이 소비될 수 있다.

서양이나, 하다못해 가까운 중국도 이상야릇한 작품들이 세계적 걸작 대열에 당당하게 들어서지만. 한국인이라면 서양처럼 이런 괴상망측한(?) 그림들을 자신의 방에 걸어놓고 감상 할 수 있을까?(아래 세계적 작품 주소 참조)

대표적 작품이 이 정도니(아래 세계적 작품주소 참조), 소소한 사정은 능히 짐작되고, 사실상 기괴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다양한 작품들도 저가(低價)에 많이 팔린다고 한다.

상술한 이발소 그림들과 비교해보자.

재삼 언급하지만 극히 희박한 소수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 전체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장애, 비장애를 막론하고) 부담스럽고 괴로운 인물화 따위의 그림보다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적극 증명하기 위해 당연히 ‘이발소 그림’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남북 장애인이 총력 일치단결하고 있다.

어떤 미술품을 선호하느냐는 문제는 자신들이 어떤 가치관이나 철학, 인식 등을 갖고 있는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명 철학자나 세계적 학자의 말을 빌릴 것 없이 문화적 소양이나 인지도가 흑백논리로 흐르고 단순할수록 사회전반의 패러다임의 질은 곤두박질친다.

저작권 문제로 작품을 소개할 수 없어 아래 주소를 소개한다.

이발소 그림과 북한그림 참고

http://www.deshow.net/cartoon/2008/bob_ross_landscape_painting_1.html

http://blog.daum.net/leepansoo/8623813

세계적 작품 참고

http://www.antiquity.tv/lucian-freud/

http://artist.96hq.com/yueminjun_2586/zuopin/78310.html

http://www.wikipaintings.org/en/jean-dubuffet/grand-maitre-of-the-outsider-1947

http://blog.aladin.co.kr/common/popup/printPopup/print_Paper.aspx?PaperId=52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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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성 칼럼리스트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왕따와 차별로 해직됐다. 현재 “圖와知” 라는 조직원 한명 뿐인 곳의 명목상 대표다. 백수 실업자로 2014년부터 담배 값이 좀 나온다니 할 일없는 형편에 아주, 조금 반갑다. 미술칼럼과 만화, 만평을 통해 현재 장애인에겐 약간 생소한 예술 문화의 저변과 미래, 장애인의 현실 등등을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면서 ‘슬프게’ 전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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