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 ⓒ서원선

케빈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기보다 큰 피아노에 앉아서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실력도 예사롭지 않았으며,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케빈은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 들어가 여러 차례 피아노 연주로 입상을 하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의 칭찬도 잦았고, 실력 있는 청년 피아니스트로 장래가 유망했다. 20대 초부터 케빈은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피아노를 연주할 때 사람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세계 3데 피아니스트만큼은 아니더라도 케빈은 남부럽지 않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직 무명이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어서 그 자체로 만족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언제나 좋은 일만 있다는 법은 없다. 케빈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친구와 음악회에 참석하러 자동차로 이동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도 큰 사고는 아니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케빈은 왼손 새끼손가락이 절단되고 말았다.

한동안 케빈은 절단된 손가락을 치료하느라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 후 케빈은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자신의 단짝인 피아노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연주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왼손에 네 손가락만으로는 전과 같이 연주가 되지 않았다.

수백 번, 수천 번 시도하였으나 연주는 전과 같지 않았으며, 눈앞이 막막했다. 결국 케빈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케빈이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등록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몇 급일까? 급수를 받는다고 해서 원하는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을까? 필자는 이런 질문을 주위 사람들에게 한번 던져 보았다.

새끼손가락 절단은 장애 등록이 안되거나 아니면 받아도 한 6급 정도나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다가 비록 6급이라도 그다지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케빈은 우리나라에서는 재활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안되는 것이다. 장애 급수는 커녕 장애 등록도 안 될 것이다.

장애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자. 새끼손가락 절단만으로는 장애가 너무 가벼워서 그렇지 않을까?

장애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 케빈은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니 스스로 알아서 새로운 직장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한다. 게다가 손가락 절단에 대한 불안감이나 평생 즐기던 일을 하지 못한다는 슬픔도 홀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케빈과 같은 경우 미국에서는 의학적인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지는 않는다. 미국은 장애를 1급-6급으로 나누어 등급에 따라서 서비스를 정하거나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의학적 잣대에 따른 등급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장애인의 환경을 고려하여 서비스를 결정한다.

비록 장애가 경해 보여도 그 장애가 직업을 바꿔야 할 만큼 중대한 경우라면 당연히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케빈과 같은 경우 손가락 절단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면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된다. 그것도 몇 개의 감면 서비스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재활서비스를 종합적으로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장애 등급은 없지만 어떠한 장애든 직업을 찾거나 유지하는데 커다랗게 영향을 미친다면 재활서비스를 전폭적으로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장애를 의학적인 잣대로 재는 우리의 등급기준이 아닌 장애인의 장애 상태와 환경을 고려하여 개별 서비스를 계획하고 제공하는 미국의 재활 시스템인 것이다.

이후 칼럼에서는 미국에서 장애 등급 없이 어떻게 재활 서비스를 결정하고 제공하는지 상세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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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선 칼럼리스트
재활복지전문인력양성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복지 분야의 제도 및 정책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미국의 장애인 재활서비스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현재 장애계의 주요 이슈인 장애 등급제 폐지, 재활서비스 대상자 판정, 개별서비스 제공 방식과 서비스의 종류, 원스톱 서비스 체계의 구축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얻은 실무경력을 토대로 정책적인 의견을 내비칠 예정이다. 미국 주정부 재활기관에서의 재활상담사로서 실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얻은 지식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선진 장애인 재활서비스 제공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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