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장애 서비스를 받으려면 반드시 15개 장애 중 하나, 혹은 하나 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15개 장애를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으나, 아무튼 15개 이외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현재에는 장애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언젠가 뉴스를 읽다가 통증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이야기의 요지는 통증장애는 장애로 인정되지 않아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없어 통증장애인들이 많은 고충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장애로 인정받지 못해서 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니 말이다.

비단 통증장애만 그러겠는가? 세상에는 장애도 많고 질병도 많은데 단지 15개 장애만 장애라고 하니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못 받는 사람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과연 몇 가지나 공식적으로 장애로 인정되어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미국에서 재활상담학을 공부할 때 '장애의 의료적 및 직업적 특성'이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재활상담학 필수 과목으로, 여러 장애의 특성과 그러한 장애가 직업 혹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배우는 과목이다.

재활상담사는 장애인의 재활이나 자립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장애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그 과목 수업을 통해서 여러 종류의 장애나 질병에 대해 배웠다. 후천성면역결핍증인 에이즈 (AIDS), 암질환, 통증 등등. 여러 장애의 특성을 배우면서는 그저 미국에서는 우리보다는 광범위하게 장애를 인정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이후 재활상담사가 돼서야 비로소 미국에서는 몇 개나 장애로 인정되는지 알 수 있었다. 대답은 정확히 모르겠다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미국에서는 특정 장애를 구별하여 해당 장애인에게만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장애나 질환이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면 장애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장애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질병이나 질환은 매우 많다. 너무 많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에이즈, 암, 통증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를 포함한 약물중독 심지어 이름도 잘 모르는 희귀질환, 매독이나 헤르페스와 같은 성병조차도 장애로 인정될 수 있다. 단 반드시 장애는 일상생활이나 직업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

어느 정도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이후 칼럼에서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이번 칼럼을 통해서는 필자가 맡았던 재활 사례를 통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미국에서는 어떠한 장애들이 장애로 인정되는지 살펴보자.

마이크는 15년이 넘는 동안 쇼핑몰에서 물건이나 박스를 운반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언재부터인가 허리에 통증이 시작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척추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으나 통증으로 인하여 하던 일을 지속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결국 마이크는 요통 때문에 무거운 것을 운반하는 일보다는 다른 일을 찾고자 하였다.

존은 20대 후반에 후천성면역결핍증인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 졸업 후 중견회사에서 회계업무를 하고 있었으나 주위 동료들이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을 두려워했다. 게다가 에이즈 치료를 위한 약물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회사에서 일하기가 점점 어려웠다. 결국 존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하기로 결심했다. 존은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약물치료의 부작용으로 여러 사람들이 같이 일하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보다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했다.

제임스는 10대 후반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1-2차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대학교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주 술을 마셨다. 그러나 제임스는 취하기 시작하면 술버릇이 매우 좋지 않아서 주위 친구들은 물론 직장 동료들마저 제임스를 피했다. 결국 제임스는 혼자서 저녁 마다 술을 마셨고 다음날 무단으로 회사를 결근했다. 결국 제임스는 회사에서 해고당했고 수년간 방황하면서 마취성분이 있는 불법 약물까지 오남용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술을 끊고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금주모임에 참여해보라는 충고를 들었다. 제임스는 금주모임에 참여하면서 재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직업재활기관을 방문했다.

위의 경우를 보듯이 미국에서는 15개 장애 이외에도 직업을 찾거나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필자는 비록 3가지 사례만 제시하였으나 이보다 훨씬 다양한 장애나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재활 서비스를 받는다. 어찌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거나 듣지 못해서 일을 하기가 어렵거나 허리통증이 심해서 일을 못하거나 약물의 부작용으로 일하기가 어렵거나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15개 장애만을 선정해 장애로 인정한다. 왜 일까? 장애인구가 많아지면 예산이 더 필요해서일까 아니면 앞으로 새로운 장애가 추가될 것인데 필자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일까?

장래의 일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도 앞으로는 특정 장애인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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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선 칼럼리스트
재활복지전문인력양성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복지 분야의 제도 및 정책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미국의 장애인 재활서비스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현재 장애계의 주요 이슈인 장애 등급제 폐지, 재활서비스 대상자 판정, 개별서비스 제공 방식과 서비스의 종류, 원스톱 서비스 체계의 구축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얻은 실무경력을 토대로 정책적인 의견을 내비칠 예정이다. 미국 주정부 재활기관에서의 재활상담사로서 실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얻은 지식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선진 장애인 재활서비스 제공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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