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를 다시 대주세요"

"카드를 한 장만 대주세요'"

버스를 탈 때마다 단말기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미리 준비해서 버스에 승차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시간에 쫓겨서 급하게 서두르면 교통카드가 아닌 다른 카드를 단말기에 갖다 대는 일이 허다하다.

일반 신용카드는 숫자 부분이 돌출되어 있어 그나마 구별이 쉬운데 반해 장애인복지카드, 고속도로할인카드, 교통카드 그리고 주민등록증은 아무런 돌출 표기가 되어있지 않아 사용할 때마다 불편을 느낀다.

카드를 발급받아 곧바로 점자 표시를 해 놓았으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면서 식별이 잘 안 된다. 그러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그마저도 떨어져 버린다.

지갑 속에 있는 여러 장의 카드들로 손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유석영

내가 가진 장애는 시각장애 단 하나인데 서비스 카드는 여러 장이다.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하기 위해서 할인카드를 내밀어야 하고, 기차를 탈 때는 장애인복지카드를 제시하게 되며,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또 다른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러 장의 카드를 소지하고 있어서 돈도 많고 지위도 높은 줄 알 텐데…….

시각장애인이 여러 장의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건 정말 불편하다. 특히 버스를 탈 때 엉뚱한 카드를 대서 단말기와 운전기사와 뒤따라오는 승객들로부터 핀잔을 들을 때는 매우 속상하다.

이왕에 서비스를 하려면 나 같은 시각장애인이 잘 식별하게 만들든지, 아니면 하나의 카드로 통합해서 카드를 발급하든가.

요즘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비밀번호도 주고 고객 등급을 위해 현금서비스 한도액도 정해서 꽁꽁 숨겨 놓은 신용 정보가 유효 기간까지 송두리째 털렸다. 꼭 바지 지퍼를 실수로 올리지 않아 치부를 모두 들어낸 기분이다.

여하간 은행이나 카드사들은 소비자들의 구미와 생리에 맞게 카드 기능을 용케도 잘 만들어 내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그만한 기술이 없어서 각 부처마다 카드를 따로 만드는지 묻고 싶다.

얘기 듣기로는 얼마 안 있으면 한 장의 카드에 모든 기능을 탑재해서 카드를 발급한다고 하던데, 그 일이 그렇게도 뜸을 들이고 시간을 끌어야 하는 건지도 궁금하다.

버스를 이용하다 자존심 털리고, 신용카드 가지고 있다가 개인정보 털리고. 계속되는 카드 대란에 내 삶이 새까맣게 멍이 들었다. 이에 대한 보상은 누가 해준단 말인가?

국무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8개 부처의 장애인 관련 업무를 조정하고, 보건복지부에 장애인정책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을턴데, 왜 이처럼 카드 통합 문제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만일 사업성이 높고 돈이 되는 일이었다면 앞 다투어 실행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누가 뭐래도 자립의 시대이다. 과거, 재활을 이야기하던 때의 소극적 방식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얼른 버려야 한다. 장애인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회참여를 실현하려 한다면 생활 속 불편이나 장벽을 공권력이나 행정력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해소하여야 한다.

아직도 장애인이 "수혜자"라고 생각한다면 어서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 2014년 현재 대한민국 장애인들은 분명한 국민이며, 당당한 "소비자"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일방적으로 시혜적인 서비스를 계속한다면 돈은 돈대로 들고 비난은 비난대로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비자와 더 가까운 발취에서 소통하며 함께 정책이나 제도를 실행해야 한다.

나의 좁은 소견일지도 모르지만, 통합된 서비스 기능을 가진 장애인복지카드 발급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실행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이유나 핑계를 댄다면 한없이 어려운 과제일 것이고, 발 벗고 나선다면 KTX보다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일이라 미루지 말고 내 일이라 생각해서 그 시간을 최대한 앞당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불편이 불가능으로, 불가능이 불행으로 릴레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불편을 해소하면 가능성이 보이고 가능성을 향해 도전하면 그것이 곧 행복이라는 사실도 가슴에 새기며 보듬어 가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내 지갑 속 '카드대란의 막'은 언제쯤 내려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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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영 칼럼니스트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향상, 선한 가치의 창출과 나눔을 이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손작업 능력을 바탕으로 질좋은 맞춤형 수제 구두를 생산하며,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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