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형벌 중에는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형이 있다. 위리안치 형은 죄인을 멀리 보내어 그곳에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죄인을 가두는 형벌이다. 죄인의 출입은 물론 외부인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중죄다.

이 같은 위리안치는 오늘날 대다수 장애인 거주시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면 시설들은 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접근조차 어려운 것일까?

장애인 거주시설은 수도권과 지방에 다양하게 분포 되어 있으나 입지 조건은 대체로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시설은 소위 산골짜기에 있어 접근이 어렵다.

이런 시설에 입소한 입소자의 외출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입소자 입장에서는 힘들게 외출 준비를 했지만 막상 승용차나 버스같은 이동수단이 없으면 외출하지 못하는 현실이 입소자를 좌절시킨다.

또한, 외부인이 시설을 방문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어, 외부인과 입소자간 접촉이 쉽지 않다.

이렇게 장애인 거주시설들은 외진 입지와 외출, 방문 제한 등으로 입소자들을 사회와 단절시키고 있다. 이러한 단절은 장애인을 ‘사회에서 없어져야 하는 존재’로 인식시켜 입소자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행위일 뿐이다.

그렇다면 시설은 왜 입소자를 사회로부터 격리 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시설의 논리는 ‘입소자가 사회에 나오다 보면 많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 있다’는 것이다. 즉, 사회에선 장애인을 책임져 줄 사람이 없기에 시설에서 보호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입소자를 감금, 폭행한 사실을 은폐시키기도 한다. 얼마 전 알려진 ‘실로암 연못의 집’ 사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치료 받아야 할 장애인을 후원금 수령 목적으로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입소자의 수급비를 착취해 시설 원장의 유흥비로 사용하는 등은 그동안 시설이 감춰왔던 잔인함을 보여주었다.

원주 ‘귀래 사랑의 집’ 보도에서 드러난, 욕창을 앓고 있던 입소자를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에서도 시설 내 위험을 발견하게 된다. 시설측이 책임을 병원의 의료 과실이라며 시신 인수를 거부해, 시신을 12년 동안 냉동고에 방치했던 일이었다.

이러한 사건은 시설 내 인권 실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것이야 말로 시설이 말하는 진정한 ‘위험’이 아닌가?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을 싫어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느냐 없느냐 즉, 종속되어 있느냐 여부이다.

시설의 외진 입지 조건과 외출 제한 등은 입소자를 더욱 종속시켜 시설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격으로 만든다. 따라서 입소자들은 시설의 잔인함마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시설에 덮여진 가시장벽을 제거하고 사회와 통하는 길을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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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선 칼럼리스트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태어나 13세 때부터 7년간 산 넘고 물 건너 외진 입지의 시설에서 살아왔다. 각기 다른 시설에 3번 입소, 2번의 수술 등 우여곡절 끌에 탈 시설해 이젠 자립을 꿈꾸고 있다. 7년 간 보아왔던 시설의 모습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산 넘고 물 건너 지역 사회로 나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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