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명절이면 고향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속터미널을 이용하게 된다. 명절을 앞둔 고속터미널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보이는 사람마다 양손 가득 선물꾸러미를 들고 있는 모습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풍경이다.

그렇게 명절 기분을 즐기며 느끼는 즐거움은 잠깐 뿐이다. 곧이어 악몽같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된 고속도로 탓에 출발해야 할 버스들이 들어오지 못해 배차가 제 시간에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터미널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2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타야 할 버스가 언제 들어오고 언제 출발하는지 알 수 없는 탓에 대기실에 앉아 있지 못하고 버스 탑승장으로 몰려든다.

사람들과 짐들로 뒤엉켜 버스 탑승장 주변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소음과 불평을 터트리는 수많은 이용자들의 아우성, 버스회사 관계자들의 외침까지 더해져 이 곳이 정녕 고속버스 터미널이 맞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누구도 배차상황에 대해 안내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탑승 대기자들이 비좁은 탑승장 앞에서 서로를 밀치고 밀어내며 자신이 타야 할 버스가 어서 배차되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만약 지금 이 곳에 농인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을 통한 정보가 필요한 농인이 있다면 어떤 정보도 볼 수 없어서 자신이 타야 할 버스를 놓치게 될 것이다. 이용자들의 원성에 지친 버스회사 관계자들도 자리를 비워 어디 한 곳 물어볼 곳 찾기도 어렵다.

버스 배차 상황이 늦어지더라도 문자전광판과 음성으로 실시간 안내를 해주면 이용자들이 대기실에 앉아 자기가 탑승해야 할 시간을 알 수 있어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데, 아무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엄청난 금액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도 이용자들을 위한 문자전광판이 사용이 되고 있는데, 이 날만큼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묻고 싶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귀성길, 올해도 여전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아수라장 속에 놓여 있을 수많은 이용자들, 그리고 혹여 그 곳에 농인이 있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귀성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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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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