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다가오고 있다. 비장애인이라면 명절날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친척이나 지인들을 많이 만날 것이다. 하지만 탈시설에 성공한 장애인들은 이 무렵 누굴 만날까? 바로 자신이 자라왔던 아동, 청소년 장애인 거주시설을 한 번쯤 찾아간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시설은 고향 같은 곳이다. 심지어 거주시설에서 생활지도교사들은 ‘엄마, 아빠’로 불리고, 시설에 입소한 무연고 장애인에게 부모처럼 행세하며 입소자를 보호할 명분을 만든다.

물론 무연고 장애인뿐만 아니라 가족이 있는 장애인도 시설 안에서는 지도교사가 부모로 불린다.

그렇다면 시설은 진정 입소자들에게 ‘가정’인 것일까? 이 같은 시설의 호칭문화를 이해하려면 시설이 생긴 원인부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 6.25전쟁 직후, 전쟁고아나 상이군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당시는 이들을 보호하고 살게 할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국가나 개인은 소 규모로 거주시설을 만들어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들과 전쟁 중 부상을 입고 중도 장애인이 된 군인을 입소시킨 것이 오늘날 장애인 거주시설의 시초다.

처음엔 고아부터 교사를 엄마, 아빠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시설 속 호칭문화가 되었다.

생활지도교사들도 부모의 마음으로 입소자들을 잘 돌본다고 시설 찬성론자들은 주장한다. 물론 가족이 있는 입소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치는 시설 내 가족 같은 분위기 조성으로 구성원간 단합을 도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탈 가족, 탈 시설’이다. 즉, 재가 장애인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시설 장애인은 시설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자립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시설과 가족은 자립생활을 막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온정주의’다. 온정주의란 가부장적 가족관계의 모델에 따라 보호ㆍ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권력자가 지배를 최상의 이익보호라고 주장하여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불평등을 합법화한다.

예를 들면 실제로 재가장애인들은 부모로부터 흔히 “내가 죽으면 너는 어떡하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은 부모가 장애인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인식해 생긴 말이다. 온정주의는 이렇듯 배려에 감춰진 또 하나의 모습이다.

자기 가족도 이러한데 하물며 거주시설은 어떻겠는가? 시설 생활지도교사를 ‘엄마, 아빠’로 부르는 행위는 시설 온정주의를 더욱 강화하여 입소 장애인을 억압하고 체벌하기 위한 좋은 명분이다. 만약 엄마 또는 아빠로 불리던 직원이 시설을 퇴사하고 나서 입소자를 자식처럼 아껴줄 지도 의문이다.

누군가가 장애인 자신을 낳고 길러 주었다면 참 감사한 일이지만 단지 보호를 명분으로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을 부모로 여기라는 것은 온정을 넘어선 강요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이 강요된 온정은 또 다른 억압을 만든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것 또한 문제지만 시설이 부모라는 이름을 빌려 억압을 정당화시키는 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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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선 칼럼리스트
19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태어나 13세 때부터 7년간 산 넘고 물 건너 외진 입지의 시설에서 살아왔다. 각기 다른 시설에 3번 입소, 2번의 수술 등 우여곡절 끌에 탈 시설해 이젠 자립을 꿈꾸고 있다. 7년 간 보아왔던 시설의 모습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산 넘고 물 건너 지역 사회로 나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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