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아주 운이 좋은 친구이자 동료가 있다. 그 친구는 2004년 12월에 결혼했는데 신혼여행을 태국 푸켓으로 갔었다. 그런데 여행을 끝내고 귀국한지 하루 만에 아직도 생생한 쓰나미가 그곳을 덮쳤다.

결혼식이 하루만 늦었어도, 아니 여행기간이 하루만 길었어도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그 친구에게 일어났을지 모른다. 운이 좋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 친구는 건강한 아들 둘을 키우는 성실한 가장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2004년 태국 및 인도네시아 등을 덮친 쓰나미는 우리에게 쓰나미 (Tsunami)라는 용어를 강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원래 쓰나미는 지진에 의해 발생하는 거대한 해일을 의미하는 일본어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이 2004년 이후 전세계에 하나의 명사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쓰나미라는 말과 함께 국제장애인권리협약 및 새로운 아태장애인10년을 위한 인천전략에서도 재난 및 위기상황에 놓인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Disaster Risk Reduction”이라는 주제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 주제에 관한 핵심적 내용은 크게 3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장애인을 원조하기 위한 전략에 대한 문제이다.

2010년 발생한 아이티의 대지진은 당시 국제 장애인 원조기관으로 전송된 장애인관련 기관 종사자의 이메일로 유명해졌고, 국제적으로 장애인을 원조하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Handicap International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 응급 구조, 구호 물품의 전달 등 기본적인 활동에서 배제되기 쉬울뿐만 아니라 폭력이나 약탈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이러한 불이익이 아니더라도 2차적 장애의 발생을 예방하는 원조나 새로운 장애를 갖지 않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부족하게 된다는 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둘째는 재난에 취약한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에 대한 예방적 차원의 거주 안정, 혹은 긴급 대피시설의 접근성 문제이다.

실제로 쓰나미뿐만 아니라 태풍, 허리케인, 토네이도 및 화산 폭발 등 여러 가지 자연재해들이 발생했을 때, 특별히 안전한 지역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재난에 취약한 지역은 늘 있기 마련이고 상당수의 장애인들이 이들 지역에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개인의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재난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점에서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장애인의 거주안전뿐만 아니라 대피 시설의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실제로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전개되고, 그러한 활동의 결과로 공항 및 대중 이용 시설뿐만 아니라 각종 도시 계획에서까지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한 보편적 설계가 널리 보급되어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의 대피 시설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부 선진국에서 장애인의 위기대처 요령에 대한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작 보급하고, 피난 시설의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끝으로 장애인을 포함하여 노약자들의 구조 및 구호를 위한 별도의 노력을 국가 단위에서 마련할 필요가 대두되고 있다.

이는 아동, 장애인, 여성, 노인으로 정리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마지막 남은 배려이다.

단순히 일반 구조 및 구호 활동에서 이들을 우선하는 노력 뿐만 아니라 이들의 구조 및 구호 활동을 종합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대책의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까지 재난 및 위기 상황에서 배려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얼마 전 일본에서 경험한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제안해 본다.

얼마 전 장애인단체실무자연수가 일본 오사카 지역에서 3박 4일의 일정으로 실시되었다. 당시 연수 프로그램 중에 인상 깊었던 첫째 날 일정을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고베의 방재센터 방문이 첫 번째이다.

우리나라에도 방재센터가 일부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 프로그램은 태풍과 같은 상황을 재현하거나 체험하는 형식이 핵심 프로그램이다. 또 화재에 대응하기 위한 소화기 작동 요령을 배우는 등의 활동이 주였다.

그러나 고베의 방재센터는 1995년 1월에 발생한 한신 대지진을 잊지 말고 향후 닥칠지 모르는 제2, 제3의 한신대지진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콘텐츠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당시 피해자들의 경험을 다큐형식의 영상으로 제작하여 상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영상 외에도 지진 피해자들이 유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심리치료활동 및 대중계몽 활동에 종사하는 모습들을 대지진 당시의 영상과 혼합하여 실감나는 영상으로 제작 상영하고 있었다.

전시관에서는 재난에 대비한 상비물품을 전시하고, 이러한 물품의 보관 및 활용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있었으며, 태풍이나 지진 상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활동들을 제공했다.

전체적으로 센터의 콘텐츠들은 단순히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뛰어 넘어 재해를 잊지 말고 일상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인간에게 큰 두려움을 안겨줄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심리적 안정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한신 대지진 당시 극한의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과 심리 상황을 알리고 극복 사례를 소개하는 등의 예방적 콘텐츠로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하버랜드라고 부르는 재해공원을 방문했다.

이곳에는 한신 대지진 당시 훼손된 고베항의 부두와 옆으로 쓰러진 항구의 가로등을 그대로 보존하여 당시 어마어마했던 피해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 이곳에 가서 그런 것을 왜 보전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아픈 과거를 잊으려고만 하기 보다는 아픈 과거를 하나의 거울로 삼기 위해 공원으로 보전하고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이러한 경험을 통해 국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재난위기상황에 대한 위험성 감소를 위해 국내적으로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장애인, 비장애인 가릴 것 없이 국내 재해예방센터의 수를 늘리고 정기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여야 하며, 학생 및 일반인들이 정기적으로 재해나 재난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실제 고베 방재센터에서 만난 대다수의 방문객은 학생들이었으며, 연간 1회 이상 방문하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학생들이 같은 장소를 매년 방문한다면 동일한 콘텐츠로 2년 이상 운영하기 어렵다고 짐작되므로 지속적인 신규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콘텐츠 역시 위기대처 요령을 포함한 단순한 체험과 함께 재난상황을 직면해 건전하게 극복한 사례를 발굴하여 이를 알리는 노력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재난에 의한 훼손을 효과적으로 복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하나의 교육 현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재난이 닥치기 전에 재난을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한 준비도 중요하지만 이미 발생한 재난이 입힌 피해를 생생히 보고 느낄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전에 보았던 뉴스에서 태풍 피해를 입은 강원도에서 예산 부족으로 복구에 몇 년이 걸린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일부 재난피해 지역에서는 재해를 대비하는 마음을 고취시킬 수 있는 하나의 매개체로 이러한 훼손 지역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끝으로 장애인, 노인, 아동, 여성의 재난 피해 최소화를 위한 각종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재해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처우를 받을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공동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장애인이나 노인, 여성이나 어린이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이고 국가의 시책에서 당연히 고려되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2011년 후쿠시마 지진을 포함하여 한신 대지진 당시에도 많이 보도된 뉴스 중에는 음식이나 구호품을 어린이나 노약자를 위해 젊은이들이 양보했다는 내용의 훈훈한 미담이 보도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이들 미담을 근거로 하여 간과되거나 미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미담은 어디까지나 미담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사회적 약자의 고유한 욕구를 반영하지는 못하는 것이므로 국가 차원의 정책에서 이를 반영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태풍, 지진, 화산 등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자연재해이고, 이러한 재해들 외에도 인간의 욕심으로 야기되는 재해도 상당수이다.

이러한 재난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오늘날 중요한 국가의 정책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만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재난방재정책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하성준 럼리스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이다.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유엔 에스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세계 장애인계의 동향, 뉴스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