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일본에서는 우리의 법을 연구하기도 하고, 일본이 장애인기본법을 제정하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일본에서도 제정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제정하기 위하여 장애인 당사자들이 유엔에 모이면서 한국의 장애인들이 활동하는 모습과 법조문을 만들어내고 주장하는 활동들을 보면서 한국의 법과 제도를 알게 되었고, 일본에서는 우리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유엔장애인 권리협약의 비준을 준비해 왔다.

일본에서는 이제 올해 12월이나 내년 1월 중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비준될 전망이다. 중위원에서는 이미 통과되었고, 상원위원회만 통과하면 곧바로 발효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택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고 제정운동을 벌여왔으나, 지난 6월에 통과된 법은 장애인차별해소법이다.

차별금지와 차별해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본 학자들은 차별금지법은 국가에서 금지를 한다고 선언만 하는 것이므로 적극적 조치에 소홀할 수 있고, 차별은 금지만으로 사라지지 않으므로 해소하기 위한 각종 정책과 지원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선언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해소정책을 펼치기 위해 장애인차별해소법을 법명으로 정하였다는 것이다.

차별해소법과 같이 한국에서도 '해소'라는 단어가 들어간 장애인관련법이 과거에 있었다. 바로 장애인정보격차 해소법이었다. 해소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격차가 해소된 것 같지도 않았고, 그 법은 결국 국가정보화기본법으로 통폐합되었다.

해소법의 한계는 지원 정책을 마련하기에는 적절할 수 있으나 강제적으로 의무화하기 어렵다는 결점이 있다. 해소를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하면 그 노력의 정도에 대하여 모니터링이나 평가는 할 수 있어도 문책을 하거나 차별을 받은 것에 대하여 권리를 구제할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차별금지란 국가가 금하였는데, 사용주나 국민이 이를 어긴 것이므로 국가의 책임은 다한 것이 되고, 차별해소는 국가의 노력의 책무를 강조한 것이니 국민이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차별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인식개선이나 차별이 일어날 것을 예방하지 못한 것은 국가의 책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역시 모호하다. 일본의 장애인차별해소법은 차별을 당한 장애인이 어떤 곳에 어떤 절차를 통하여 진정하고 구제받을 수 있는지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앞으로 하위 법령을 만들면서 고민해 볼 숙제라고 한다.

그러나 모법에 담겨져 있지 않은 구제절차가 하위법에서 명확하게 나타날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미국에서와 같이 일본도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구가 없다. 일본 정부는 파리조약에 의한 그러한 인권전담기구를 만들 의지가 없다. 인권을 강조하는 선진국일수록 독립기구와 같은 안전장치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에서는 미국처럼 법원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수적인 법조인들이 전반적으로 장애인의 차별문제와 인권에 대하여 얼마나 감수성을 가질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처음에는 인식부족으로 어려움을 경험할지 모르나 사건을 다루다 보면 전반적으로 법조인들이 점차 감수성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판례가 쌓이면서 인권보장 구제가 축적될 수 있고, 징벌적 가중처벌이나 손해배상이 동시에 추진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독립기구보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먼 미래를 보면 말이다.

한국에서의 사법부의 장애인 인권과 차별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약하여 법조인들은 너무나 보수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법의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손해의 증명을 인정할 수 없다거나, 장애인에게 이 사회가 얼마나 부담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든가, 장애인을 위해 배려하고 베풀고 있으니 장애인들은 재활을 위해 노력해야 하므로 발생한 문제는 장애인의 노력부족 탓이라고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감수성은 사법부보다 높으나 수사권도 없고, 권고라는 조치는 강제성도 없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언론과 상부 감독기관을 이용하여 압박하는 방법으로 인권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는 권리적 측면이 강조되고, 해소는 시혜의 성격이 강하다.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방법에서도 금지가 훨씬 강력한 이미지를 줄 것이다.

일본에서 권리협약을 비준이 늦어진 것은 관련법과의 상충조항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 하기 위한 것이었고, 차별금지가 아닌 해소는 사회적 인식과 정책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일본 주장은 일본 우월주의에 의하여 한국보다 더 잘 하고 있으나 현재의 부족함에 대하여는 핑계가 있음을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악을 금지한다고 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악을 해소한다고 하여 사라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범죄는 금지하는 것이지, 해소하는 것이 아니다. 갈증과 같은 인간의 욕구는 해소하는 것이 맞다.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은 해소가 맞지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금지가 맞다.

한국에서 권리협약 국가보고서에 우리는 장애인차별근지법까지 제정하여 잘 하고 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국가는 금지했으니 지키지 않은 사회나 국민은 국가의 책임은 아니라는 식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실제로 격차가 얼마나 있으며, 예산을 얼마나 투입하고 있고, 욕구가 필요한 모든 장애인에게 서비스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법으로 금하고 있어 정부 의지는 강력하다는 보고는 너무나 자랑일변도이며, 무책임하고 권리를 누리지 못한 장애인에게 아무런 미안함도 없이 공치사를 하고 있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해소법이 더 효과적인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차별은 금지의 대상이 맞다.

일본의 학자들이 못내 해소법을 선택한 의미를 찾고는 있으나 스스로 그 한계를 인정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법을 준비하였으나, 그 법은 정치권에 의해 가위질당하고, 더 이상 어찌해 볼 능력도 없이 무력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일단 통과가 된 후에라도 지속적으로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수정안을 내어 차별이 금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한국법이 더 앞서 있다고 하더라도 자만할 일은 아니다. 차별금지의 위반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국가는 개별화된 인권보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의 15만엔의 장애인연금을 우리는 15만원으로 맞추고 있다.

루게릭과 같은 희귀난치성 환자가 한국에서는 사회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아 일본으로 왔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한국은 돈 드는 복지는 기피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인권교육의 체계와 감시망, 법의 주무부처와 실행기관, 지자체와 민간의 센터운영 등 다양한 사업들이 서로 연대하거나 협력하는 방안, 노동위원회와 같이 수사권을 확보하고 갑찰의 지휘 아래 사법부와 협력하는 방안, 지적장애와 같은 장애유형별 인권보장 방안 등도 한국이 앞으로 검토해 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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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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